LHK Creation Inc

해외봉제현장르포 필리핀 편 ❶

독보적인 경쟁력, 척박한 필리핀을 옥토로

지난 7월 초 필리핀 봉제환경 파악차 현지를 방문해, 한인 봉제업체 대표자 몇 분을 만나고 돌아왔다. 이번호는 첫 방문업체인 LHK Creation Inc의 이원주 대표를 만나 본다. <편집자주>

필리핀 한인 봉제 1세대. 그의 발자취가 곧 현지 한인 봉제의 역사인 LHK Creation Inc의 이원주 대표는 경남 고성이 고향이다. 그는 70년대 중후반 부산의 국제그룹 산하 조광무역에 입사해 기계 공무 업무를 비롯해 다양한 파트에서 경험을 쌓았고 이후 이 회사가 일찍이 해외진출을 시도하면서 1980년 필리핀 마닐라 공장에 1년간 파견 근무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곳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후 1983년에는 거래업체였던 미국의 의류회사로부터 필리핀 공장의 매니저를 맡아달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다시 돌아가게 된다. 3년여를 일한 후 이원주 대표는 미국 회사를 사직하고 지인과 함께 소자본으로 여성의류 하청공장을 설립했다. 이후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1987년에 ‘케이 리 패션’을 설립하게 된다. 케이 리 패션은 하청생산을 거쳐 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직접 수출을 시작했고 이후 연간 수출 4천만불대까지 매출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신공장 건설과 함께 LHK 크리에이션으로 사명을 변경, 오늘에 이르고 있는 동사는 필리핀 현지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필리핀 한인 봉제의 개척 세대인 이대표는 현지 필리핀 동포 사회를 대표하는 한인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2003년부터 사단법인 JTS코리아(이사장 법륜스님) 필리핀지부 대표를 맡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민다나오 오지에 학교 설립을 지원하는 등, 현지에서 사회공헌 사업에도 많은 투자와 관심을 기울여오고 있다. 짧은 필리핀 방문기간 동안 이대표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현지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주로 어떤 품목을 생산하시고 주요 수출국은 어디인지요?
숙녀복 재킷, 코트류가 주요 생산품목이고 그 밖에 관련 우븐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유럽 오더도 많았지만 지금은 미국으로 향하는 제품이 많습니다. 미국의 주요 고급 숙녀복 브랜드들이 주요 바이어들입니다.

생산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이원주 대표

-현재 공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요?
지금 공장은 약 5년 전에 새로 지은 공장입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공장은 시설을 축소시켜 3개 라인을 가동하고 있고 신공장은 6개 대형라인에 1200명 가량이 일하고 있습니다. 우븐 라인이다 보니 1개 라인의 길이가 상당히 긴 편입니다. 한 때 가장 활발하게 수출할 때는 약 3천명 가량으로 운용했습니다. 현재는 기존 공장 및 관계사 합쳐서 약 2600명 정도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대미 쿼타 철폐 이후 필리핀의 많은 봉제공장들이 경쟁력을 잃고 폐업하거나 타국으로 떠나 갔습니다. 그러나 이대표께서는 굳건히 이곳에서 공장을 유지하고 계시는데 바이어들이 꺼리는 필리핀 소재의 LHK에 오더를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품질이나 납기가 확실하다는 것은 오랫 동안 우리가 지켜온 원칙이니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바이어들이 우리 공장을 찾는 이유는 어려운 것을 해결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이어들은 종종 다른 데서 잘 못푸는 어려운 것은 ‘미스터 리’에게 보내면 된다고 농담삼아 이야기 합니다. 다른 공장에서는 힘든 스타일이나 풀기 어려운 공정이 있는 것은 결국 우리 공장으로 옵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옷에 특화된 공장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우리 공장과 거래하는 바이어는 숫적으로는 많지 않고, 바이어도 우리가 선정하는 편입니다.

도저히 거래하기 힘든 바이어는 저희쪽에서 오히려 거절하기도 합니다. 바이어 숫자 많다고 봉제공장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공장의 봉제 임가공 단가는 대략 재킷이 4불 80센트에서 8불 50센트 사이이고 코트는 6불 80센트에서 16불까지 합니다. 비교적 가공임이 높은 편인데 저희는 적정 단가를 요구하고 이것에 대해 바이어가 수용하지 않으면 거래하지 않습니다. 품질은 벤츠를 요구하면서 가공임은 도요다 수준을 준다고 하면 우리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거지요. 저는 가공임 부분에 대해서는 바이어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충분한 요구를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바이어가 우리가 제시한 단가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하면 당장 당신네 회사의 엔지니어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왜 이 단가가 나오는지 공정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겠다고 합니다.

바이어들이 가공임 적게 주고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싼 생산비만 요구할 때 공장들도 가공임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일부 공정 빼먹고 원부자재 바꾸는 일이 생깁니다. 비즈니스는 신뢰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속임수로 돈을 벌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당하고 합리적인 단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이어들이 찾는 다른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의 개발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입니다. 실제 개발을 위한 인원만도 상당수인데 패턴실 파트를 제외하고 샘플실 인원만 하더라도 70명 가량이 됩니다. 저희는 주요 바이어들의 신규 브랜드 런칭 파트너로 많이 참여해보았습니다. 런칭 과정에서 옷을 만들다보면 여러가지 변수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도 종종 있는데 처음 함께 옷을 개발하다가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하겠다고 본사 개발실에서 진행합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다시 돌고 돌아 ‘미스터 리’에게 가보라고 결론나서 돌아오기도 합니다.

5년 전 새로 건립한 신공장 사옥 전경

-필리핀 봉제의 어려움 중 하나가 인접국의 부상, 즉 베트남이라는 강력한 봉제 강국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필리핀의 인건비는 계속 올랐고 물가도 상승하는데 오히려 가공임은 내려가는 상황을 맞자 공장들이 하나둘 인근 베트남 등지로 떠나갔습니다. 공장 철수로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자 많은 문제가 야기되었습니다. 공장 숫자가 줄자 바이어들의 발걸음부터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지역이든지 공장이 몰려 있고 선택폭이 넓어야 몰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은 오히려 공장수가 줄어들었고 거기에 베트남 단가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져 더 힘들었습니다. 필리핀에 던지는 오더를 베트남 단가로 맞춰달라고 하는 것은 아예 손해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금은 필리핀이나 베트남이나 임금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지만 불과 5~6년 전만 하더라도 격차가 있었어요. 결국 우리도 뭔가 선택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선택을 하셨는지요?
바이어들도 계속 베트남 가격을 제시하고 필리핀 사정도 갈수록 나아질 기미가 없어지자 우리도 베트남에 진출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베트남 진출을 위해 리서치를 진행했습니다. 여러차례 호치민을 비롯해 하노이 등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결론은 필리핀에서 계속 밀고 나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상황을 살펴보니 우리가 하는 오더를 넣어서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과 인건비 상승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사실 때문에 진출을 다시 한 번 검토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결정이 얼마나 옳은 것이었나 새삼 알게 됩니다. 지금 필리핀이나 베트남이나 실질 지급 임금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몇년새 베트남의 최저임금이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린 결과이고 반면 필리핀의 최저임금은 아주 소폭씩 상승했습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급 브랜드를 생산하는 LHK는 이 현상과 관련해 어떤 영향이 있는지요?
온라인 판매 증가 현상은 특히 저희같은 고급 의류제조 업체 입장에서는 크게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온라인 판매 증가가 뜻하는 것은 고급의류 소비가 줄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라인에 판매되는 옷들은 고급 제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브랜드를 내세우지도 않고 거의 가격으로 승부하는 제품들입니다. 브랜드 네임, 브랜드 파워로 의류가 판매되고 소비 욕구를 촉발시키는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1,200명 규모의 LHK는 최고급 숙녀복을 생산, 미주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 최근 아프리카 모로코를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로 방문하셨는지?
중저가 의류의 강세 속에서 전반적으로 봉제업이 가공임에 대한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저희 거래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급 브랜드 제품을 유통하는 기업들이기는 하지만 생산비 다운에 대한 요구는 다른 일반 업체와 마찬가지로 항상 현재 진행중입니다. 최근 이러한 세계적인 일련의 흐름을 파악하고 거래 브랜드 중 한 곳이 지중해 연안 국가인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생산이나 소싱을 하면 어떤지 아이디어를 내서 조사차 현지에 다녀온 것입니다. 이 바이어는 모로코에서 의류를 생산해 유럽시장에 판매하는데 과연 어떤 경로를 거치며 이 지역이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실제 확인하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모로코는 스페인에서 페리로 30분이면 가는 곳이며 아프리카에 속해 있지만 유럽과 더 가까운 나라이기도 합니다. 거래 업체에서 모로코 생산 원단이 듀티 프리여서 현지에서 생산한 원단으로 봉제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지 봉제공장들도 둘러 보았는데 대부분 스페인이나 이태리, 프랑스인들이 주인이거나 이들의 이민 2세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장이 많았습니다. 2천명 단위의 공장들이 많았는데 모로코는 이슬람이지만 개방된 나라이고 유럽보다 임금이 싸기 때문에 메리트는 분명 있어 보였습니다. 특히 이슬람이지만 다른 회교국과는 달리 프레이룸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자 매력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봉제 투자도 어느 정도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필리핀에서 거의 40여년의 세월을 보내셨는데 지금 현재 필리핀 봉제가 안고 있는 가장 난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필리핀의 가장 큰 난제는 인건비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봉제산업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다보니 연관 산업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거의 대부분을 외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리핀은 원부자재가 제대로 생산되지 않습니다. 우리 공장은 원부자재를 거의 다 수입에 의존합니다. 일부 부자재만 로컬 기업 제품을 사용하는데 극히 비중이 낮습니다. 로컬 기업이 생산해도 중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때가 많아 홍콩에서 원부자재 소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체 핸들링은 이곳 필리핀 본사에서 하고 실제 구매 업무 등은 홍콩 사무실에서 진행해 이곳 필리핀으로 보내줍니다. 홍콩 사무실에 직원이 7명 근무하고 있는데 그곳의 역할이 큰 편입니다.

-FOB 수출이다보니 원부자재 소싱이나 관리가 무척 중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실제 어떤가요?
저희 공장에서 진행하는 오더에 대응하는 원단은 아무데서나 구할 수가 없고 바이어 지정에 의해 특정 업체에서 생산해 공급받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생산하는 원단은 상당히 비싼 편입니다. 제일 싼 것이 야드당 3불 50센트 정도이고 고가인 것은 80달러에 달하는 것도 있습니다. 주로 사용하는 것은 약 13달러에서 23달러 사이의 가격대 제품입니다. 원단이 비싸다보니 요척이 무척 중요합니다. 고가 원단인데 요척이 오버되면 가공임이 다 날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거의 맞춤복 수준으로 만든다고 봐야합니다. 우리 공장이 자동화를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니트나 일반 공장들이 재단실에 연단기나 자동재단기를 사용하지만 우리는 거의 이런 장비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원단을 재단하기 전 검단기를 통해 한 번 검사과정을 거치고 원단을 연단하는 과정에서도 일일이 체크를 합니다. 이런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동 연단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자동화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원단 요척이 늘어나 손실이 더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주 극소량의 요척을 내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고 그러다보니 거의 맞춤식 수작업으로 재단을 진행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만드는 옷은 베트남이나 다른 국가에서 생산하는 대량 생산 개념의 옷들은 아닙니다. 대부분 몇백장에서 많아야 만장 정도의 수준인 극히 소량 다품종 제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만장이 넘어가는 오더는 저희 공장으로서는 엄청난 물량이지만 베트남에서라면 많지도 않은 일반 오더겠지요.

-원단 소싱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원단에 소요되는 자금이 많기 때문에 필리핀에서 핸들링을 하면 파이낸스는 홍콩 사무실에서 진행하는 편입니다. 원단은 주로 이태리계 회사가 중국에 투자한 공장에서 생산해 사용합니다. 바이어가 원단을 개발하고 그 원단을 다른 바이어에게 팔지 않는 조건으로 이태리계 회사가 위탁생산해 전량 공급하는 방식입니다. 원단에 문제가 생기면 이태리 기술자가 공장을 오는데 중국에 있지만 이태리 회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개발력으로 바이어들로부터 론칭파트너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생산하는 옷들이 고급제품이 많아 실수가 있으면 손실이 클 것이고 따라서 고급 기술자들도 상당히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지요?
고급 숙녀복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고급 기술자들도 많이 필요합니다. 고급 기술을 가진 한국 직원들도 제법 있지만 현지인 고급 기술자들도 많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고급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부단히 교육시키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요?
오래 전부터 필리핀에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 공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공장 컨설팅을 통해 변화를 모색한 점입니다. 컨설팅은 국내 대기업 연구소에서 부소장을 역임한 분이 설립한 ‘한국프로덕션시스템’을 통해 진행했습니다. 컨설팅을 의뢰했을 당시 공장 실사 후 이 상태에서도 이익을 내고 있다면 컨설팅 후에는 더 많은 이익을 실현하는 공장을 만들어 주겠다는 공언에 바로 컨설팅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컨설팅이 약 10년 정도 지속되었고 회사는 매년 1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컨설팅 과정이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직원 교육이 이뤄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재단실 작업 광경

-오랜 컨설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땠나요?
컨설팅 과정은 익숙한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과정입니다. 익숙하지만 불합리함이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변화 추이를 체크하고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분석해서 액션 플랜을 만들고 최종 결과 보고까지 지난한 과정이 소요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오히려 현지인 근로자들보다 한국인 관리자와 기술자들이 먼저 손들고 포기하고 떠나는 일이 많습니다. 내가 옷 만들러 왔지 이런 일하러 왔느냐며 퇴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반면 현지인 근로자들은 비교적 잘 따라와 주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교육을 통해 개선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컨설팅 기간도 길었고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제일 힘들었던 것은 어떤 것이였나요?
앞서도 밝혔듯이 한국인 기술자들의 이탈이 과정을 어렵게 했습니다. 사실 한국인 기술자들은 엔지니어로서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적이 많았습니다. 어떤 과제를 주면 문제 해결 능력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 과정이 어떤 원리로 이뤄졌는지는 모르거나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저희들이 과거 기계를 배울 때 소위 사수라는 분들께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돌아오는 대답이 “새까맣게 어린 새끼가…” 하는 말로 시작하는 욕부터 먼저 들어야했던 것도 바로 깊이가 얕은 기술로 일했기때문입니다. 저는 초창기 봉제를 배울 때 일본인 기술자로부터 기초 원리부터 배웠습니다. 그 이후 조광무역에 근무할 때는 기계를 분해해놓고 몇날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원리를 공부하고 혹 문제가 생기면 끝까지 해결하기 위해 씨름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회상해 보면 그 때의 열정이 큰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초를 충분히 이해하고 깊이를 더해가야 진정한 엔지니어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컨설팅 후 공장의 변화에 대해 만족하시는지요?
컨설팅 전보다 전체적으로 공장 발란스도 잘 맞고 현장의 효율성도 높아졌습니다. 외부적인 여건만 좋다면 이윤도 훨씬 늘어났을 것입니다. 허투루 소요되는 낭비요소나 비용도 거의 없어져 관리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는 편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왜 이렇게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직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필리핀에서 운영해 오시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우리와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쌓고 거래하던 바이어가 한순간에 다른 한국 벤더와 거래한다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가공임을 낮춰준다는 조건으로 오더를 빼가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단가에 만들 수 있으면 한 번 해보라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다시 찾아와 거래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가공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은 서로 다 죽는 일입니다. 서로 매너를 지키면서 정상적으로 경쟁을 해야지 발전이 있습니다. 신뢰를 가지고 비즈니스를 해야지 가공임 가지고 비신사적으로 거래업체를 빼앗는 행위를 한 기업들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자제분이 합류해 함께 일하고 있는데 든든하시겠습니다.
미국에서 비즈니스 관련 전공 공부를 마친 후 한국에서 군복무를 끝내고 직장 생활하다가 아버지 회사로 들어와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전공을 잘 살려 파이낸스, 회계 등 여러 파트 일을 일을 열심히 해주고 있습니다. 자금이 소요되는 곳과 그렇지 말아야 할 곳을 잘 구분할줄도 알고 코스트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회사 전반적인 자금 흐름을 잘 파악해 관리해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좋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랫 동안 민다나오 오지에 학교 설립 사업을 진행해 오고 계신데요. 이 지역이 반군과 정부군이 교전을 벌이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전지역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학교 설립을 위해 오랫 동안 일해왔고 정부군과 반군 모두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위험한 지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대한 안전한 루트를 통해 진행합니다. 지금도 매월 1회는 현지를 직접 방문해 교사 공사 진척 상황 등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만다나오는 외부 지원이 거의 없었던 지역이기 때문에 매우 낙후되어 있습니다. 학교를 짓고 교육을 통해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정토회를 통해 이 사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입니다.

취재: 李相澈 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