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재 | 명주사 대표

젊은 피, 시대의 흐름을 읽다
중랑구 중화동에 위치한 요가복 제조업체 명주사의 최인재 대표(35세)는 40년을 동안 봉제업에 종사한 어머니와 함께 동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5년 전, 어머니와 단 둘이서 시작한 공장은 현재 10여 명의 규모. 어려운 국내 봉제환경 속에서도 한 걸음, 두 걸음을 내딛고 있는 최인재 대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최인재 명주사 대표

젊은 봉제인을 만났다. 여러 경로를 통해 섭외한 결과였다. 하얀색 야구모자, 옅은 청색 셔츠, 뿔테 안경을 쓴 그의 모습은 한마디로 ‘신선’했다. 사무를 보던 직원이 최인재 대표에게 안내했을 때는 이곳 사장이시냐고, 재차 확인해야 했다. 최 대표는 중랑구 중화동에 위치한 봉제업체 ‘명주사’를 운영하고 있다. 명주사는 10명 남짓한 규모로, 주력 품목은 오드람프 봉제가 주로 이루어지는 요가복이다. 명주사의 명판을 너머 사내에 발을 들였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는 밝았다. 현장을 비추는 조명이 밝은 탓인 듯도 했다. 봉제 현장의 조도는 작업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적절한 밝기의 조명은 작업환경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여겨졌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 국내의 어려운 봉제 환경 탓에 연령이 높은 봉제인들은 점점 은퇴하고 새로이 봉제 산업에 뛰어드는 젊은 사람들은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봉제업에 발을 들이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을 뮤지컬과로 나왔습니다. 봉제업과는 전혀 다른 분야죠. 대학은 아예 졸업을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군대를 갔다가 제대하고, 사촌 형이 중고차 판매업체의 사장을 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2년 정도를 일했습니다. 이후에는 아동 뮤지컬 극단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오디션을 보고 1년 정도는 극단에 있기도 했습니다. 뮤지컬이 하고 싶었던 거죠. 또 그 이후엔 GS리테일에 있었어요. 삼각김밥, 샌드위치를 만드는 공장이 오산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6개월 정도를 일했습니다. 그 뒤엔 서울로 와서 핸드폰 파는 일을 4개월 정도 했고, 클럽 매니저로도 2, 3년을 일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어머니가 봉제업을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렇게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죠.
 왜 주력품목으로 요가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까?
처음부터 요가복을 전문적으로 생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요가복 업체가 생긴 지는 이제 10년 안팎입니다. 제 어머니는 40년 동안 이 일을 해오셨구요. 요가복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즈음으로, 그 전에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다양한 품목을 생산했습니다. 양장부터 시작해, 남방, 코트, 청자켓, 면바지 등을 만들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근처에 이르러서는 티 생산을 많이 했구요. 그 당시에는 티 몇억 장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니, 그런 흐름을 따라갔던 거죠. 요가복도 마찬가지입니다. 2013년 당시 배럴이라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래쉬가드 회사가 나와서, 래쉬가드를 유행시켰어요. 이게 유행이 일어나니까, 이걸 하면 괜찮겠다 싶었죠. 수영복이나 래쉬가드에는 오드람프 봉제가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당시 오드람프 봉제를 해낼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아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요가복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잘 탄 셈이었습니다.
 오드람프를 봉제를 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았다고 했는데, 본 공장에서는 어떻게 요가복 생산을 시작했습니까?
그 당시 명주사는 어머니와 저, 그리고 아시는 분 한두 명 인원으로 물품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규모가 작고, 자금도 별로 없었던 처지라 오드람프 장비를 구매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중랑패션지원센터에서 구형기기를 빌려 봉제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직원으로 계시는 분들은 구형 기기를 다룰 수 없지만, 어머니는 다룰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굉장히 실력이 좋으세요. 지금까지 사람을 쓰면서 다양한 분들을 봐왔지만 제 어머니보다 실력이 좋으신 분은 아직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요가복이 성과가 좋자, 점차 장비를 갖추고 직원도 늘리게 되었습니다.

 최저임금이 인상 후 어려움을 느끼진 않는지?
직원 분들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었기에 저희와는 상관없는 이슈였습니다.

 명주사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중랑구 일대의 봉제 업체 숫자는 보통 많게는 5000개 까지도 봅니다. 그러나 요가복 제조업체는 열 몇 곳 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히 다른 공장에서 봉제할 수 없는 오더도 저희는 충분히 해낼 수 있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다른 공장에서 봉제하기 어렵다고 손든 오더가 저희 쪽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남다른 기술력 덕택에 거래 관계에서도 쉽게 ‘을’이 되지 않는 편입니다.

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봉제업에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주 5일제입니다.
직원 분들의 남편들이 아직 일을 하고 계시는 나이층이고 주 5일제 직장에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5일 근무하고, 주말을 쉬면 좋잖아요. 사실 직원 분들이 저처럼 젊지 않다보니, 6일 내내 일하고 하루 쉬었다가, 다시 6일 내내 일하기는 힘들어요. 능률이 안 나오는 거죠. 주 5일제 근무가 더 능률적이라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희가 처음엔 월급을 많이 드리지 않지만, 작업자 분들의 실력 향상에 따라 1, 2달 단위로 월급을 인상합니다. 주 5일제 근무를 하면서도 예전 공장에서 받았던 임금 수준만큼 받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안정적으로 고용이 유지되는 거죠. 주 5일 근무하면서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받으니 그만두는 직원이 적습니다. 숙련자들의 고용이 안정적인 만큼 제품도 품질을 유지하구요.

명주사 작업현장

 직원 복지에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복지에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사소하게 간식을 챙겨 드린다든지, 여름에는 같이 휴가를 같이 간다든지, 사소하게 신경쓰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공휴일에는 일을 일찍 마치기도 하구요. 솔직히 봉제공장 입장에서는 ‘빨간 날’을 다 쉬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봉제공장들은 공휴일에 일을 하는데, 저희는 공휴일이면 다섯 시에 퇴근을 해요. 또 여름 휴가 보너스, 신년 보너스 이런 것들도 챙깁니다.

재봉기 다루는 실력이 뛰어나다는 최인재 대표의 어머니 작업 모습

 국내 봉제업체가 점차 줄어들고, 새로 유입되는 젊은 인구도 적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더량이 많은 것은 대기업들이 다 외국으로 가지고 나가버리니까, 한국에서 공장을 하다가도 외국으로 나가 공장을 차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국내에서 하는 분들은 더 힘들어지고요. 나라에서 어느 정도는 국내 생산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줘야 되는데, 그런 대책들이 현재 부실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거든요. 일본 국내 판매되는 제품의 경우 10% 정도는 국내에서 반드시 봉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외국으로 오더할 수 없습니다. 10% 정도만 해도 국내 봉제업체가 유지될 수 있는 안정성이 생기는데, 자꾸 오더가 줄어드니까 봉제공장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10%만 있어도 누군가는 그 파이를 위해 새로 일을 배우거든요. 기자도 자리가 나니까 누군가는 기자가 되려고 하는 거잖아요? 다른 일들도 그렇고. 먹을 수 있는 파이가 남아있어야 새 사람이 계속 들어올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봉제는 그 파이가 계속 줄고 있거든요. 봉제공장의 일이 점점 줄어드니까 젊은 인구의 유입이 잘 되지 않는 겁니다. 개인 차원에서 이걸 해결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겁니다. 근데 현재 봉제 특구로 지정된 중랑구에서도 제대로 된 정책은 잘 보이지 않아요. 실질적으로 봉제업체에 돌아가는 혜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 현재 영세 봉제업체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영세 봉제업체들은 세무 관련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자등록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이 꽤 있어요. 사업자등록을 하고 계산서를 끊어주면 3개월, 6개월 뒤에 세금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지식이 없는 봉제업체들은 나라가 갑자기 돈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태를 파악하고 정부나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봉제업체를 교육·지원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 | 이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