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임 다운에도 공정은 더 까탈

-오더 가뭄으로 가공임 인하에 내몰린 봉제업계의 현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니트류 스포츠웨어와 골프웨어 등을 생산하는 A사는 최근 거래업체로부터 기존에 거래하던 가공임에서 좀 더 깎자는 요구를 받았다. 기존 거래하던 가공임도 낮은 수준인데 또 인하를 요구해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가공임 인하를 거절하면 좋겠지만 요즘 오더 사정을 감안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대부분의 오더가 눈에 띄게 해외로 빠져나가고 그나마 남아 있는 물량이 별로 없어 프로모션사들도 공장 잡기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모션사와 비교적 거래 관계를 잘 유지해왔기 때문에 그나마 이런 오더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공임 인하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산공정도 예전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으로 요구해와 다시 한 번 오더를 받아야 할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거래업체 제품은 지금까지 랜덤 검사를 진행해 왔는데 앞으로는 검사원의 전수검사를 통과해야만 납품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만성 오더 부족에 공임은 하락, 작업 공정은 더 까다롭게 요구

전수검사를 하겠다는 것은 가공임을 깎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장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손해가 크다. 우선 전수검사를 위해서 제품을 공장에 대기시켜야 하고 그 시간만큼 다른 작업을 하는데 많은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검사원이 공장과 약속한 스케줄을 잘 지킨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시로 늦어지거나 검사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공장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사의 관계자는 최근 업계의 오더 사정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가공임은 떨어지고 일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프로모션사들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도저히 생산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이곳저곳 공장을 쑤시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오더 가뭄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공장이라도 걸리면 아주 낮은 가격으로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가격만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작업 공정도 까다롭게 보면서 공장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요즘 브랜드뿐만 아니라 동대문 쪽의 재래시장 역시 오더 부족으로 공장들의 가공임이 점점 깎이는 추세라고 한다. 일부 공장들 중에는 너무 내려간 가공임 때문에 그야말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대문 등 재래시장에 주로 우븐 셔츠를 생산해 납품하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 C사의 K 사장은 최근 일부 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공임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하한선 무너진 가공임 체계, 무분별한 경쟁은 공멸 자초  

셔츠 한 벌에 5천원도 안 되는 가격에 생산하는 공장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3천 원대에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가격에 할 수 있는 공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 정도라고 밝혔다. “최저임금도 오르고 물가도 올라 모든 것이 비싸지고 있는데 봉제 가공임은 왜 자꾸 내려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적정 수준의 가격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당장 오더 사정이 급한 공장들이 많아 하한선이 자꾸 무너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업자들의 상술도 가세하면서 결국 죽어나는 것은 봉제업뿐이라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오랜 의류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해외생산이 늘어나고 사드 여파에 따른 재래시장의 타격으로 국내 생산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장들은 가공임이 계속 내려가지만 당장 공장 문을 닫을 수 없어 손해를 감수하고 재봉기를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인력도 부족하고 임금은 계속 오르다보니 공장들은 더욱 인원을 줄이고 소규모화 하는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규모 인원으로 공장을 꾸리다보니 저가 오더라도 받아 밤늦게까지 장시간 일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밤늦게까지 불켜진 소규모 공장들은 몸은 힘들고 돈은 되지 않는 업계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경인 것이다.

[李相澈 局長] lee@bobbin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