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봉제기계 | 봉제주변기기의 중심, ‘LASTAR’

土種 機器 릴레이

지구촌 봉제공장 어딜 가더라도 한국 토종 봉제기기 브랜드, ‘LASTAR’를 쉽게 만날 수 있다. 30년을 훌쩍 넘겨가며 연구·개발과 제조·공급에 전심전력을 다해온 덕분이다. 더불어 품목이 다양한 것도 ‘LASTAR’ 브랜드의 인지도 확산에 일조했다. 자동 벨트고리 달이기, 밴드나이프, 각종 프레스기기류(톱휴징 프레스, 로터리 프레스, 전사 프레스…), 검단기, 해단기, 티셔츠·바지 뒤집기, 청소기 등등 무려 40여 가지에 이른다. ‘봉제주변기기 종합 메이커’란 타이틀에 모자람이 없다.

개발 욕심에, 아이템만 40여 가지 넘어

본지가 소재한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를 나서 서부간선도로, 내부순환로, 북부간선도로를 거쳐 구리IC를 빠져나와 다시 47번 도로로 바꿔 탔다. 그렇게 67km를 달려 포천군 내촌면 소학리에 자리잡은 (주)동양봉제기계에 들어섰다. 사무동과 조립 및 가공동, 창고동이 너른 마당을 가운데 두고 위치해 있다. 대지 1,600평에 공장은 500평 규모이다. 톱휴징 프레스를 비롯 덩치 큰 봉제기기를 조립하고 보관하고 상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 확보가 필수다. 바로 그러한 필요 충분조건을 다 갖춘 공장이다. 회사 설립 이후 아이템이 점차 늘어나면서 여러번에 걸쳐 공장을 확장 이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동사 이순재 대표는 새로운 아이템에 대한 개발 욕구가 무척 강하다.

이순재 대표

공장 안을 둘러보다가 또하나 개발 중인 아이템을 발견했다. 흡사 ‘떡시루’가 연상되는 접착 프레스(아래 사진)인데 작동방식이 아주 독특하다. 이 대표의 설명이다. “봉제현장에 가보면 한꺼번에 심지접착을 하기 위해 매우 힘겹게 작업하는 광경을 봤다. 원단 사이사이에 접착심지를 겹쳐 넣어 두께가 한 뼘이 넘는 작업물을 스팀 아이롱으로 여러번에 걸쳐 꾹꾹 눌러 접착하고 있었다.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은데다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보였다. 자동화 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함께 연구해보자고 했다. 이후 의뢰자와 수차례 미팅을 갖고 현장의 작업 모습을 관찰한 후 개발에 착수했다. 기판 개발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처음엔 큰 판으로 한 번에 눌러지게 설계했다. 그러다보니 보일러와 히터의 전기가 상당량 소모되어 소규모의 내수공장에서 사용하기엔 무리였다.

개발 의뢰한 쪽에서는 그 정도면 됐다고 했으나 내가 판단하기엔 가성비가 떨어지고 시장성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개발자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원점에서 다시 설계에 들어갔다. 윗 판이 10cm 폭으로 옮겨가며 여러번 눌러주는 방식으로 설계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그렇게 시연해 봤더니 일반 공장의 전기용량 가지고도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고 작업시간도 빨라졌다. 결국 시행착오를 거쳐 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해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순재 대표는 접착 프레스 개발을 위해 창신동 일대 소규모 봉제공장을 드나들다가 봉제용 의자에 눈이 갔다. 각목 혹은 철제다리로 된 길다란 의자, 바로 봉제 작업자(미싱사)들이 사용하는 의자다. 4~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작업자의 건강이나 편의성을 위한 배려는 도무지 없어 보이는 이 의자의 개선에 팔을 걷어 붙인 서울봉제산업협회에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다. 현장의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귀 기울인 결과물이 바로 ‘스마트 봉제 의자’다.(본지 5월호 150쪽 참조)

봉제현장의 작업 불편함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

이처럼 또하나의 ‘LASTAR’ 품목이 더해졌다. 앞으로 또 어떤 품목이 ‘LASTAR’의 로고를 달고 세상에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품목은 바로 이 대표의 끊임없는 봉제 관심의 발로에서 비롯된다. 서울 중심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작업 공간을 비교적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좋으나 구인난 등 애로사항도 있다고 하소연 했다. “현재 작업 인원이 모자란 편이다. 지자체(포천)에서도 기업들 애로사항 덜어준다며 구인코너를 개설해놓고 있다.

그러나 별도움이 못된다. 들어가 보면 거의 60세에 가까운 비 전문인력들 뿐이다. 지난번에 기계 조립이 밀려 하는 수 없이 중국 청도 공장에 근무하는 인원을 불러들여 바쁜 일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10년 넘게 청도 공장에 근무하면서 우리 기계를 능숙하게 조립해 왔기 때문에 가끔 급하면 그런 식으로 응급 대처하기도 한다. 신입직원 채용도 어렵지만 채용되었다 해도 곧바로 생산에 투입할 수 없다. 최소 1년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 겨우 제 역할을 한다. 청도에 있는(동양봉제기계 청도 공장) 중국 직원들 복수비자 신청을 하면 5년이 나온다. 이곳에 와서 한 달, 연장시키면 두 달은 근무할 수 있어 바쁠 때 한 달씩 두어번 이곳으로 불러 근무시키는게 오히려 낫다.” 현재 동사의 생산시스템은 이원화 되어 있다.

기계 뼈대는 중국에서 만들어 포천 공장으로 가져와 완성을 시킨다. 한동안은 청도 공장에서 조립도 했다. 지금은 중국 내수판매가 별로 없는데다가 절곡을 비롯 가공기술 면에서 아무래도 중국이 정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프레스종류는 전부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포천 공장 생산팀은 권순선 이사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권이사는 이 대표의 처남으로 동양프레스 초창기 창립멤버이기도 하다. 권이사는 중국 청도공장 법인장과 총경리로 근무하다가 올해 초 한국공장으로 복귀했다.

봉제기기에 대한 일편단심, 여전히 진행형

동사의 주력 아이템은 역시 휴징 프레스다.  미니 프레스, 로타리 프레스도 기복없이 꾸준하게 나가는 편이라고 했다. 효자품목인 셈이다. 공장 시작하고서 첫 작품이 로터리 프레스다. 1981년 을지로 6가에 미싱점을 오픈했다. 미싱가게를 꾸려가면서 일제 로터리 프레스 판매를 겸했다. 당시 일제 로터리 프레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수입상이 들여온 로터리 프레스의 80%는 이 대표의 손을 거쳐 봉제현장에 설치되었다. 기계 설치를 위해 봉제현장을 드나들면서 프레스의 원리를 확실하게 터득하게 된 이대표는 좀 더 개선하면 훨씬 성능을 끌어 올릴 수 있겠다 싶었다. 결국 직접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로터리 프레스를 국산화한 업체가 한군데 있었고 준비 중인 업체도 있었다.

로터리 프레스 조립에 열중인 권순선 이사. 동양프레스 초창기 창립멤버인 권이사는 중국 청도공장 법인장과 총경리로 근무하다가 올해 초 한국(포천) 공장으로 복귀, 근무 중이다.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절실했다. 두꺼운 작업물의 경우 기존 로터리 프레스로는 한계가 있었다. 두꺼운 청바지는 ‘스베루’(미끄러짐) 현상 때문에 드럼이 청바지를 타고 넘지 못한다는 사실에 착안, 원통형 드럼에 기어를 달기로 결심했다. 이는 일제 로터리 프레스에는 없는 독창적 아이디어였다. 드럼과 실리콘봉이 기어에 맞물려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며 이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두꺼운 청바지 뒷주머니 입구 쪽도 기어가 부착된 프레스에 집어넣으면 부드럽게 작업이 되다보니 금새 입소문이 났다. 조립하기가 바쁠 정도로 로터리프레스는 날개 돋친듯 한 달에 4~50대 씩 팔려 나갔다.

그것도 내수시장에만. 그만큼 봉제시장이 호황이었던 때다. 대당 170만 원 정도에 판매되었다. 실은 원가 개념도 모르던 때라 수입품보다는 조금 싸게 주먹구구식으로 가격을 책정해 팔았다. 기존 타 업체 프레스를 사용하던 많은 공장들로부터 기어가 부착된 우리 것으로 교체해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이에 동력을 얻어 지금은 단종됐지만 벨트 루프 절단기, 냉칼 열칼 테이프 절단기도 연이어 생산품목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장을 둘러 보던 중 이순재 대표(사진)는 포장 비닐에 감겨 있는 바지 뒤집는 기계 앞에 멈춰섰다. “LASTAR 바지 뒤집기의 성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특히 청바지 공장이 많은 미국에서는 이태리제나 덴마크제가 있는데도 꼭 LASTAR 바지 뒤집기를 고집한다”고 이야기 한다.

동사의 주력 아이템은 역시 휴징프레스다. 미니 프레스, 로터리 프레스도 기복없이 꾸준하게 나가는 효자품목이다.

그 이유는 한국의 모터 전문기업에 특별히 의뢰해 뒤집기 용도에 맞는 특수 다단 블로워 모터를 개발시켜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류 뒤집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한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 개발 당시 합판으로 만들었다가 에어가 샌다고 하여 니스칠을 하기도 하는 등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지금은 세상에서 이런 성능의 바지 뒤집기는 LASTAR 브랜드가 유일할 것이라며 자신했다. 아이템이 많아도 주문 즉시 대부분 출고 가능하다. 자체 공장에 창고동을 두어 항상 스톡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고를 둘러 봤다. 봉제공장용 청소기에서부터 밴드나이프, 각종 프레스기기류 등이 포장되어 창고 다락에 질서정연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물론 수량이 많으면 주문 후 납기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나 어느 아이템이든 10대 정도까지는 주문과 동시 출고 가능할 정도로 항상 스텐바이하고 있다고 했다. 오로지 한국산 봉제기기의 매운맛을 세계시장에 보여 주겠다는 일념으로 30년 외길을 쉼없이 걸어왔다. 그의 봉제기기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