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숙 | World Jin Garment Co., Ltd. 대표

고난은 있어도 좌절은 없었던 3년여 미얀마 진출기

중국 청도에서 2014년 미얀마로 진출한 월드진은 니트류를 전문 생산,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초창기 노조와의 갈등으로 심각한 노사분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무사히 극복하고 지금은 흑자 운영되는 알토란같은 공장으로 키워냈다. 정의숙 대표를 만나 노사분규 극복 사연 등 그간의 진출 과정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주>


 미얀마 진출 시기와 이전 동기는?

2013년부터 미얀마에 들어와 공장을 물색하다가 마땅한 토지를 임차하고 건물은 용도에 맞게 우리가 직접 설계 후 공사를 마무리해 2014년 8월부터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진출 동기는 중국 청도의 자체 공장 운영이 더 이상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에 중국 청도에 진출했고 초창기에는 괜찮은 편이었는데 그 이후 점점 경쟁도 치열해지고 인건비도 올라 한계가 왔습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중국 청도 공장을 폐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서 도저히 못하겠다는 판단에 결국 철수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중국 철수 직전에는 환율 사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처음 진출 당시에는 위안화 환율이 100위안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180~200위안으로 올라가니까 경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환율 오르고 인건비도 같이 올라가니까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여기에 주수출국인 일본의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 더더욱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어 두 손 두 발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중국에 협력공장은 있고 일부 봉제해서 일본으로 수출 보내고 있습니다. 자체 공장만 없앴을 뿐이고 협력 공장을 통한 생산과 원부자재 등의 소싱을 위해 중국 사업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 일본 수출 전문업체인데 다른 나라 오더는 거래하지 않는지?
가끔 내수도 병행 생산합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대부분이 니트류이고 간혹 우븐이 가미된 스타일도 생산합니다. 가공임은 아무래도 내수가 훨씬 나은 편입니다. 일본 수출 물량은 단가가 박한 편인데 임가공비는 20~30년 전이나 거의 같고 오르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물가 상승분을 감안한다면 일본 오더는 단가가 한참 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수도 가공임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일본 오더에 비하면 괜찮은 편입니다.

 미얀마 공장을 가동한지 3년째 접어드는데 월드진이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은 무엇인지?
우선 3명의 한국 관리자들의 원활한 소통을 바탕으로 현장을 최소 인원 대비 최대 효율로 이끌어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희 회사 전체로 따져도 한국 직원이 이곳에 모인 3명이 전부입니다. 저를 비롯해 강태부 공장장과 회계담당자 한분이 있습니다. 3명이 일하고 있지만 호흡이 잘 맞아 큰 어려움 없습니다. 저는 일본 쪽 오더 영업과 중국쪽 자재 소싱을 담당하고 강태부 공장장이 생산을 그리고 한 분이 자금, 회계 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장은 현지 직원이 560명 일하고 있는데 1,000명이 일한 만큼의 생산성을 올릴 정도로 효율이 높습니다.

 공장 설립하고 가동 초기에 노사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사정이 어땠는지?
공장 가동은 2014년 했지만 가동 초기에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공장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공장이었냐면 양곤에서 5대 스트라이크 공장으로 소문을 탔을 정도였습니다. 내부적인 관리에도 문제가 있었고 노조를 조종하는 외부 세력이 들어와 문제를 키운 것도 있었습니다. 가동한지 얼마 안 된 공장이어서 어수선한 가운데 한국인 관리자들의 현장 장악력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국인 공장장 몇 분이 우리 공장을 거쳐 갔는데 제대로 현장 관리가 된 적이 없었고, 그 결과 생산이 정상적으로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직원들을 부추기는 데모 주동 세력도 암약해 노사분규가 잦았습니다. 가동 이후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임금지급을 늦추거나 직원 복지 등의 다른 문제가 없었음에도 쟁의를 부추기는 세력이 암약하는 바람에 스트라이크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습니다. 스트라이크 발생 사유가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뭔가 협상의 여지가 있겠는데 그렇지가 않아 답답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화장실에서 귀신이 나온다, 화장실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 공장 내부가 너무 덥다 등등 이유 같지 않은 것을 들어 스트라이크를 하는 거예요. 화장실 청결 문제나 공장 내부 온도는 미얀마의 다른 보통 공장보다 신축공장이어서 오히려 사정이 나았는데 이런 불만으로 일 못하겠다는 통에 회사에서는 대응책을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화장실에서 귀신이 빈번하게 나온다는 통에 직원들 스스로 용하다는 승려를 데려다가 불교식 행사를 치루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어디에선가 엉뚱한 이유를 대서 일 못 하겠다 또 귀신 나왔다 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고 데모를 위한 데모를 하는 양상이었습니다. 결국 양곤 5대 스트라이크 공장이라는 딱지를 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일부지만 현지인들 중에는 악의적인 거짓말로 아연실색케 만들곤 했습니다. 일례로 출고가 임박해서 미리 미리 이것저것 준비하라고 지시해놓고 다음날 가보면 갑자기 폴리백이 없다고 말합니다. 폴리백 박스는 있는데 안에 폴리백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이 출고인데 폴리백이 없으면 주문하고 며칠 기다려야 합니다. 행택은 중국에서 주문해서 자재실에 보관해 놓는데 어느 날 가보면 행택이 종류별로 보관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뒤죽박죽되어 있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섞어놓은 것인데 이걸 또 분류하는데 시간 다 잡아 먹습니다. 어느 날은 스티커가 없다는 둥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공장 내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런 사고들로 시간이 붕 뜨면 직원들은 또 빈둥거리거나 사고처리하면서 우왕좌왕하며 시간 다 보내는 것이 일상사였습니다. 한 달에 한 컨테이너도 출고 못하는 상황이 달리 생긴 게 아닙니다.

 이런 문제들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는지?
전반적인 자체 관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현재 강태부 공장장을 새로 선임하면서 공장 관리를 혁신적이다 할 정도로 변화를 주었습니다. 강 공장장이 공장 전반으로 문제를 파악한 후 먼저 한국인 관리자부터 교체를 진행했고 그 후 내부 현지 직원들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강 공장장이 부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스트라이크가 수시로 벌어져 공장 전반이 어수선했습니다. 아예 공장 문을 2달 정도 닫고 인력을 정리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2달 어렵더라도 공장 문을 닫는 것이 20년 편하게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고 설득해왔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공장 내에서 스트라이크를 하고 있던 직원들을 일단 공장 밖으로 보냈습니다. 현장에서는 일을 해야 하니 공장 밖에서 데모를 하든 하라고 보냈던 것입니다. 결국 3백명 인원을 대거 정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공장 내에서 스트라이크를 벌이던 이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냈는데 나중에는 정문 앞에 텐트까지 설치하려는 통에 경비업체를 바꿔가면서까지 저지했던 일도 있습니다. 이 과정 동안 현지 노동부에 수없이 불려가고 노사 양측의 협상을 종용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밀어 붙였습니다.

노동부에서 하도 불러내는 통에 나중에는 변호사를 선임해 모든 것을 처리하겠다고 통보했고 그 이후부터는 불러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뒤부터 다시 부르지 않더군요. 결국 3백명 인원 중 다시 일하겠다는 일부 인원들만 노동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서명 후 다시 고용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봉제반의 상당수 인력이 물갈이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공장은 정상 가동 중입니다. 신기하게도 주동세력이 나가자 공장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주동 인물들이 물갈이 되면서 공장이 안정되기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흑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초반 적자가 워낙 많이 났던 탓에 그 손실을 만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 스트라이크 발생으로 공장 정상화를 위해 실제 2개월간 공장 문을 닫았는지?
당시 스트라이크는 대부분 봉제반 인력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졌습니다. 물론 이 기간에 완전히 공장을 스톱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봉제반 외에 재단, 완성반은 가동을 했습니다. 일부 봉제반 인력들이 완성이나 재단반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같이 합류하지 않은데 대한 불만으로 쪽가위를 집어 던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봉제반에서 할 수 없는 작업은 외주로 돌렸습니다. 오더를 이미 받아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협력공장들이 작업하니까 납기를 맞출 수 없어 당시 물량의 90%를 에어로 보냈고 에어차지만 13만 불 가까이 나왔습니다. 그 때 너무 어려워 공장을 매각할까도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공장이 정상화되기 전 정확히 2005년 12월까지는 매월 평균 5만 불의 적자를 깔고 갔습니다. 900명 인원 가지고 3개월 동안 컨테이너 1대 실어 보내지 못할 때도 있었으니 적자를 안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 공장 정상화 이후 가장 많이 변화된 것은 무엇입니까?
원래 인력이 90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일을 겪은 이후 500명 선까지 줄였습니다. 실제 공장이 안정되고 나니 900명 인력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500명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900명까지 늘어난 데에는 회사 관리 미비도 있지만 직원들이 인원을 계속 보충해달라는 요구에 늘어난 측면도 있습니다. 일단 인원이 충원되면 앉아 놀아도 월급은 나오니까 하는 일 없이 앉아있는 직원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는데 미얀마 봉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없는지?
초창기 힘든 경험 때문에 지금은 보는 시야가 오히려 넓어졌습니다. 미얀마 봉제를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얀마를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중국에 비하면 미얀마 봉제는 턱도 없다며 이야기합니다. 사실 미얀마에 온 상당수의 관계자들이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 역시 초창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비관적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급여는 전 세계에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저임금 국이고 실제 사람들의 성격도 온순하고 괜찮은 편이어서 잘 관리하고 소통한다면 잘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얀마의 대부분 공장들이 니트 라인의 경우 대부분 한 라인당 30~40명 가량을 배치시킵니다. 그러나 우리 공장은 라인당 15명 정도를 투입합니다. 그렇게 인력을 적게 배치해도 타 공장과 비교하면 작업량은 비슷합니다. 결국 관리의 싸움입니다. 봉제 관리라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설명해주고 작업자들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서로간의 눈빛은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 됩니다. 또한 직원들이 기술적으로 존경할 수 있게 만들어야 제대로 된 관리가 될 수 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자신보다 앞서 있다고 판단되면 선생님(새야)이라 존칭을 사용하며 깍듯이 대합니다. 현장 업무를 잘 아는 관리자에게는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현지인들로부터 이렇게 기술적인 존경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현장 관리자의 관리력이나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 공장이 정상 가동되고 원활히 돌아가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다면?
인센티브제도를 적절히 활용했던 것입니다. 우리 공장은 타겟 목표량을 달성하면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보통 하루 개인당 600짯 정도 지급하는데 이 정도 액수면 현지식으로 두 끼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목표를 달성해 인센티브를 확보하기 위해 직원들은 각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라인별로 구성원 각자가 스스로 맡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한 사람의 작업 태만으로 라인 전체가 목표달성에 실패할 경우 구성원들이 먼저 알아서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요즘은 라인에 내려가 오너인 제가 말을 걸어도 일하기 바빠 대답은 커녕 잘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 미얀마가 봉제 투자시 공장 설립이나 인허가 등도 어려운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미얀마 당국에 공장 허가 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처음 공장 짓겠다고 들어왔을 때는 미얀마 당국 즉 MIC에 소방시설 허가를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소방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설치하라고 합니다. 소방 시설은 엄밀히 건물주가 임대할 때 전기 소방 물 기본 세팅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다릅니다. 전기 소방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 주변에 알아봤더니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빈 땅 사서 건물 지으면 토지주가 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한 측에서 시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조업종은 소방 시설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3,000만 짯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새로 투자해야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건물주와 협의를 해서 소방, 전기와 관련된 시설은 우리가 직접 시공했으니 나중에 임대차 계약이 끝난 후에는 다음 임차인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매듭지었습니다.

 미얀마가 임금 외에는 전반적으로 부대비용이 비싼 편이라고 들었는데 실제 어떤지요?
공장 임대료만 하더라도 미얀마는 비싼 편입니다. 현재 우리공장은 건물만 약 4,000평(200×180 ft) 규모인데 임대료가 월 14,000불로 원화로 따지면 2,000만 원 가까이 됩니다. 굳이 중국과 비교한다면 월급 빼고는 싼 것이 거의 없고 임대료나 여타 비용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정말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전기 단전을 경험할 때입니다. 보통의 나라라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전기 못준다고 통보라도 하지만 여기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잠깐 전기 들어오다가 정전되기를 반복합니다. 정전은 일방적입니다. 그것이 인프라적인 문제인지 기술적인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언반구 없이 전기 사용업체가 일방적으로 감수하라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전기 사정 때문에 대부분 공장이 발전기 사용이 많은데 유류비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인력 대비 생산성이 높아 상당히 안정적인 공장이 되었지만 좀 더 자동화된 생력화 장비를 더 보강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공장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기기나 기술적인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이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이 부분에 보강이 이뤄진다면 그야말로 꿈의 공장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