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웅 | 한세 VN 실장

“어제의 옷이 아니라 내일의 옷을 만들어야죠”

장효웅 한세 VN 실장은 패턴분야에서만 44년 동안 한우물만 파왔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 패턴사로 일하면서 후진양성에도 앞장서 왔다. 최근 베트남에서 현지 근로자들의 패턴 기술지도에 앞장서고 있는 장효웅 실장과 같은 한세실업에서 패턴사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장성순 실장의 이색적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 봉제(패턴) 분야 업계에 처음 발을 딛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패턴, 봉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고인이 되신 앙드레김 선생님의 친형님과 한 동네에 살고 있어 그 인연으로 ‘앙드레김’ 의상실에 점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자연스레 패턴을 접하고 기초를 배우게 되었다.

 그동안의 행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1973년부터 일을 했으니 44년간 패턴 업무를 해왔다. 그중 34년을 앙드레김, 미스박테일러, 김정아부티크, 이광희부티크, 루치아노최, 이원재 등 국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했다. 이후 7년간 노브랜드, 한솔섬유에서 일하고 잠시 2년간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 이사, 한남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하며 패턴 교육에 종사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지난해 2월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한세실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 한세실업에 입사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세에 입사하게 된 과정과 맡고 있는 주 업무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62세의 나이에 취업을 하려고 하니 주위의 반응은 예상대로 냉담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 저기 문을 두드리고 있던 차에 평상시에도 항상 격려를 해 주시던 지인의 소개로 한세실업에 노크하게 되었다. 나이를 상관하지 않고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세실업의 이념과 부합하게 되어 패턴 실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베트남 구찌 지역에 위치한 한세 VN은 봉제라인만 9개 공장동에 140여 개 라인, 재단동, 샘플실 3개, 개발실 3개가 한 곳에 있어서 직원 1만여 명이 함께 일하고 있는 작은 공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그중 개발실에서 현지인 패턴사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이 작업한 것들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 베트남 현지 근로자의 습득력은 어떠하며, 패턴 교육 핵심 포인트는?
습득력은 매우 빠르다. 배우려는 자세와 의지도 커 과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패턴 교육에 있어 단순한 수치에 의한 패턴 제작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인체의 구조 및 활동 방향, 활동량 등을 고려하여 그에 맞는 패턴을 제작할 수 있도록 교육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패턴 교육에 있어 언어문제나 기타 애로사항은 없는가?
직원들이 잘 따라와 주어서 큰 문제점은 없지만 베트남어를 익히지 못해 교육 진행에 있어 아직 미흡한 점이 있다. 특히 패턴은 말로 설명해야 할 것이 많은데 그 모든 것을 직접 시연하고 몇 마디 베트남어, 나머지는 손짓 발짓 해 가며 교육을 하자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작업물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속만 터지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현지 근로자들의 배우려는 열정에 교육 시간만큼은 어느 때보다 진중하다. 베트남어를 빨리 익히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 베트남 현지 근로자들을 가르치면서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은데…
베트남 현지 근로자들에게 패턴 기술을 완전히 전수하면 한국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끌려 다니던 시대에서 벗어나 따라가는 시대, 앞으로는 앞서가는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앞서 가기 위해 남의 길을 막는 것은 발전이 없고 다함께 퇴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지 근로자들을 열심히 끌어주고 따라오게 만들어주면서 그들보다 앞서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진정 앞서가는 삶이고 계속해서 앞서가는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최선을 다해 직원들과 소통하며 교육에 임하고 있다.

 한세실업의 서울 본사에 자제분이 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선 자랑스럽다. 몇 년 전에 유럽의 중소강국을 이야기하며 그 나라들의 작지만 강한 기업, 세계 최고의 히든 챔피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어느 나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 최고의 햄을 생산하는 공장의 기술자를 소개하는데 아버지는 그곳의 최고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일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대를 졸업하고 한 회사에서 근무하며 언젠가는 아버지와 같은 장인이 되기를 꿈꾸는 내용이다. 기술자를 우대하고 스스로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그들과 그러한 사회가 참으로 부러웠다. 그런데 아직 우리의 사회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나와 아들이 세계적인 강소기업에서 함께 일하며 그들과 똑같은 꿈을 꾸며 일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하다.

 패턴 기술자로서 역량을 키워 나가기 위한 자세는?
봉제 패턴분야 뿐만 아니라 어떠한 기술에도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 옛 어른들이 “기술 하나만 잘 배우면 절대로 굶는 일은 없다” 고 말했다. 기업은 100년 가기 어렵고 망해서 없어질 수도 있지만 기술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변화하지 못하는 기술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 같은 선을 그리더라도 매번 무엇인가 변화를 주어야 살아있는 선이 되고, 살아있는 선이 그려져야 살아있는 옷이 만들어 진다. 패턴사는 어제의 선, 어제의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선, 내일의 옷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변화에 끝이란 없기 때문에 항상 다변하는 트렌드에 따라 끝없이 움직이고 변해야 한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이 있다면?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고 꿈은 노력하면 이루어 질 수 있다.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주어진 만큼 현지 근로자들과 함께 내가 일하고 있는 개발실이 세계 최고의 개발실이 되는 그날 까지 계속 움직이고 변화하며 노력할 것이다.


릴레이인터뷰

한세실업 서울 본사 개발실에 근무하고 있는 장성순 패턴실장은 내수 11년, 벤더 4년 총 15년 동안 패턴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그의 패턴 철학과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들어본다. <편집자주>

◆ 父子가 같은 기업 패턴 전문기술직에 종사하고 있다. 한세실업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아버지가 먼저 우븐 파트에 입사하고 나중에 입사하게 된 케이스다. 당시 근무하던 곳에서 맡은 복종이 스포츠 액티브웨어 분야였는데, 한세에서 니트 파트 숙녀복을 담당할 패턴사를 구인 중이었다.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분야라 이직을 결심하고 아버지와 같은 한세에 입사하게 됐다.

◆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궁금한데…
아버지가 잠깐 동안 하청공장을 운영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곳에 놀러가면서 옷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알았다. 처음 봉제공장에서 일을 배울 때 완성반 직원이 아버지 직업을 물어봤을 때 재단사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자세히 몰랐다. 군대를 갔다 와서 제대로 의류 일을 배우고 궁금한 것을 수시로 아버지에게 물어보면서 패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든든한 지원군 덕에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 브랜드업체에서 패턴사와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내수 브랜드에서는 디자이너가 도식화를 그려 와서 부족한 부분은 구두로 설명을 해준다. 그것을 토대로 원단 특성이나 봉제 방법에 맞는 패턴을 제작해서 샘플원단이나 비슷한 원단으로 가봉을 본다. 가봉이 나오면 디자이너가 보완할 부분이나 자기 생각과 다른 부분들을 수정해 달라고 의뢰를 하고 그에 맞춰 패턴 수정을 해서 완성된 샘플을 만들어낸다. 그후 품평회를 통해서 생산 할 샘플들이 결정이 되면 전과 같은 수정 과정을 한두 번 더 거쳐서 최종 패턴이 공장으로 전달이 된다. 이 과정들이 디자이너와 패턴사가 한 공간에 있어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의견을 나누기 때문에 오해나 잘 못 전달되는 일이 적다. 한편 벤더의 경우 디자이너는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에 있기 때문에 도식화 스케치와 기준 스펙 그리고 몇 줄 안 되는 코멘트만으로 Proto Develop 패턴 작업을 한다. 그중 생산이 결정된 스타일은 Technical Designer가 구체적으로 샘플의 문제점과 어떻게 수정하라는 코멘트와 그에 따른 Spec을 정리해주고 그것을 가지고 패턴 수정을 한다.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사진과 코멘트와 스펙만으로 작업하다보면 다소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 의류 생산과정에 있어 처음 구상했던 것과 결과물이 달라질 때가 많은데…
난해한 디자인이나 니트 원단 특성만 믿고 필요한 라인이나 다트 없이 원하는 핏(Fit)을 강요하는 경우 정말 일이 어려워진다. 패턴 수정도 수정이지만 상대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을 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서로가 타협할 수 있는 선에서 그러면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옷이 만들어지면 성취감은 상당하다.

◆ 창조적인 패턴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를 들어 똑같은 옷을 만들어 달라고 패턴까지 구해다 주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기존 패턴을 참고하여 본인의 방식이 가미된 패턴으로 옷을 만들어 잘 나오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인의 패턴으로 작업한 옷이 기존 옷보다 스타일이 살지 않을 때 왜 카피하라는데 마음대로 했냐 등의 질책이 따라오게 된다. 창조적인 패턴을 위해서는 스스로 옷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많이 보고, 관심 있게 보고, 유행을 체크하고, 잘 팔리는 아이템을 항상 체크해야 한다. 또한 디자이너의 눈높이를 항상 파악해야 한다. 항상 자신의 기술력을 높이는데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 본인만의 패턴 철학과 목표가 있다면?
패턴은 수학 공식이 아니고 정답도 없다. 유행이나 소재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고 신소재가 개발 될 수도 있다. 유행이 지나 안 쓰이는 소재가 다시 쓰일 수도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살아있는 기술이기에 최고의 패턴 또는 패턴사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에 맞는 패턴이 있고 패턴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항상 변화에 맞춰 스스로 변화하는 자가 최고의 패턴사에 가장 근접한 사람 일 것이다. 앞으로 바람은 패턴 이외에 외국어 회화 실력을 더욱 키워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최고 엔지니어로 일해 보는 것이 목표이다.

인터뷰: 장희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