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난 사람 | 신동열 | 재베트남호치민섬유협의회 회장/신동가먼트(SHIN DONG GARMENT Co., Ltd.) 대표이사

봉제, 교류와 소통으로 공존의 길 모색해야
지금 한국 봉제기업들의 최대 투자진출 국가는 베트남이고 지역으로는 호치민과 그 인근 지역이다. 호치민 지역에서 일하는 한인 교포의 상당수가 섬유 봉제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업체들이 진출한 지역이다보니 산업별, 단위별, 지역별로 여러 자생적 모임과 단체가 결성되어 있다. 섬유 봉제 관련해 이 지역의 대표적 단체로 재베트남호치민섬유협의회가 있다. 현지 봉제업체들은 코참(베트남 호치민 한인상공회의소)과 섬유협의회가 투자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현지 대정부 활동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어 꼭 필요한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의 투자 환경은 경제발전 속도에 영향을 받아 나날이 변화하고 있다. 인력 고갈, 임금 인상, 오더 감소, 채산성 악화 등 여러 문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현지 투자업체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동종 업체들이 똘똘 뭉쳐 성공적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재베트남호치민섬유협의회의 수장을 맡고 있는 신동열 회장(신동가먼트 대표이사)을 마침 협의회 정기 모임과 신동가먼트 사무실에서 두 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걸걸한 목소리의 신회장은 베트남 봉제가 쉽지는 않겠지만 각자 하기 나름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베트남 봉제 어렵다고 들었다.
오더는 줄고 임금은 오르고 갈수록 생산비가 상승하면서 경쟁력을 잃은 공장들이 정리되고 있다. 최근 베트남으로 해외투자가 증가하면서 인력난도 심화되고 있다. 실제 호치민 지역의 중소 규모 CM 공장들의 폐업률이 근래 들어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새 많이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공장들이 몰락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봉제환경 악화에도 탄탄한 실력을 갖춘 공장들은 앞으로도 경쟁력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본다.

섬유협의회는 어떤 활동을 주로 하나?
진출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상호 발전 방안 모색, 그리고 상호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다. 상호 발전과 이익을 위해서는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교류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임금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임금 문제는 어느 한 지역에 몰려 있는 공장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관심사다. 그런데 어떤 공장이 우리는 돈을 많이 버니까 임금을 더 올려주겠다고 나설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 지역 내 타사의 근로자들은 동요하게 된다. 나중에는 주변 공장들이 다 영향을 받게 되고 문을 닫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모임을 통해 협의를 하고 어느 선까지 인상선을 정할지 결정해 상호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이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동가먼트는 전량 유니클로 니트류를 생산한다.

회원사들은 협조적인가?
회원사들 간의 교류도 활발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비롯해 각종 행사에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다. 마침 오는 10월 13일에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친선골프대회를 개최하는데 많은 회원과 가족들이 참석해 왔고 올해 역시 성황리에 치러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원들은 공통 관심사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대정부 대응이나 지역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중국 기업들의 베트남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계와 다르게 임금, 노무 관리 등에서 차이가 많고 다소 공격적인 면이 있다. 인력 모집의 예를 보면 우리와 비교해 터무니없이 높은 임금을 제시하여 고용을 유도한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능력급제로서 근로자들이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제시하고 높은 임금을 준다고 속임수를 쓴다. 이런 행태들이 우리 기업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 가뜩이나 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협의회 차원에서 방법을 모색하고 공동 대응해 나가야 한다.

신동가먼트 이야기를 좀 듣고 싶다. 주로 어떤 것을 생산하나?
유니클로 전문 CM 공장이다. 전체 14개 라인에 예비라인 1개 라인이 있고 인원은 대략 1400명가량이다. 주로 티셔츠류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전 세계로 수출되며 주 거래 에이전트는 한솔이다. 유니클로는 품질 관리가 까다로운 옷이다. 불량이 0.3% 이상이면 출하가 불허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품질이나 납기 때문에 클레임을 당해본 적은 없다. 납기가 늦어 에어로 띄워 본 적도 없다.

품질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으시다.
유니클로 담당자들이 우리 공장에 와서 저와 밥 한번 먹자는 소리를 안 한다. 나는 처음부터 유니클로 담당자들에게 당신들이 일하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 당신들에게 사정하며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들의 기준에 철저히 부합하게 만들어 줄 테니 정확하게 검사하고 판단하라고 했다. 대신 접대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담당자들은 공장 관계자가 접대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식사 대접해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 나 역시 제품 정확히 만들어 줄 뿐 갑을 관계로 거래하고 싶지 않다. 이런 제 고집 때문에 예전에는 소소한 사건도 많았다. 10여 년 전이었는데 당시 거래하던 L사의 한 검사원이 정규 근무시간을 넘겨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 검사를 하겠다고 통보를 해왔다. 어쩔 수 없이 검사 인력과 내가 회사에 남아 그 검사 담당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공장에 나타나 검사 업무는 보지 않고 사무실에서 노트북만 꺼내 놓고 보다가 시간이 지나자 그냥 가려고 했다. 사무실을 나가는 그 담당자를 불러 세워서 만약 앞으로 당신이 우리 공장에 다시 나타나면 당신네 회사와 거래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그 담당자는 해고됐다. 예전에 거래업체 검사 담당자들의 이런 갑질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내가 일 똑바로 하고 제품에 문제 없으면 겁날 것이 뭐가 있겠나.

봉제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봉제기기에도 조예가 깊다고 들었다.
17세 때 청계천 미싱상가에서 일했다. ‘특수미싱’이라는 곳에서 일했는데 중고재봉기 사다가 수리하고 개조해서 판매하는 업체였다. 그 때 일하면서 재봉기에 대한 많은 기술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봉제업체 보전기사로 이직했고 이후 생산관리 업무로 전환했다가 해외로 나오게 되었다. 봉제기계를 배웠기 때문에 기계에 대해 관심도 많고 나름대로 연구도 많이 했다. 봉제업체에서 보전기사로 일할 때는 재봉기 기술도 좋고 이것저것 품질과 생산성 높일 수 있는 것을 많이 만지작거려서 인정도 받았다. 심지어 4년제 정규대학 나온 직원보다 봉급이 더 많아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력이 좀 남다르다. 그간의 지나쳐온 발자취가 궁금한데.
봉제업체 보전기사로 갔다가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분이 독립을 하게 되었다. 그분과 함께 나와서 생산관리 업무를 맡으라고 해서 기계 보전일은 손 놓고 현장 관리자로 일했다. 그러다가 해외진출이 봇물을 이룰 무렵 좀 생소한 지역이었던 베트남으로 오게 되었다. 그 때가 91년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중국에 또 다른 공장을 설립했다. 나보고 중국과 베트남을 일주일씩 오가며 관리하라고 하더라. 회사도 그렇고 나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회사에서는 독립은 하되 베트남 공장은 계속 관리해달라고 부탁해왔다. 그래서 3년을 더 관리해주고 나왔다. 그 후 봉제인형을 만드는 공장을 2년 했다. 결국 잘 안 돼 공장 접고 이후 다시 의류공장을 설립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공장을 둘러보니 기계나 설비가 남다른 데가 많다. 봉제공장 다니면서 처음 보는 설비도 보인다.
기계 일을 한 탓인지 기계에 대한 욕심이 많다. 좋은 장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재봉기에 지식이 있어서 현장에 다니면 신형 재봉기가 있는데 구닥다리 기계로 시대착오적인 일을 하는 꼴을 못 본다. 당장 기계 바꾸라고 한다. ‘기계쟁이’들이 다 그렇지만 연구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고안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공장에는 없는 처음 보는 설비도 간혹 눈에 띌 것이다. 대부분 내가 직접 고안하고 제작 의뢰까지 발로 뛰며 만든 것이다.

해외에 있으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요즘 국내 사정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청년수당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혹은 구하지 않은 젊은이에게 사회 진출 적응을 위해 월 50만 원 정도를 지급한다고 알고 있는데 참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50만 원 주고 부모에게 용돈 몇 푼 받으면 혼자 사는 청년은 사실 일을 안 해도 생활할 수 있다. 용돈 공짜로 주는데 왜 힘들게 사회 나가서 일을 하나? 청년들이 악착같이 일하게 만들어야지 왜 수당을 주어서 일할 의욕을 꺾게 만드나? 정작 수당을 주어야 할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는 노인들이다. 열심히 일했고 이제는 일할 기력이 없는 노인들은 더 받아도 되지만 청년은 아니다. 공돈보다 일할 의욕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국내 일자리 없으면 베트남 같은 일자리 많은 해외로 뛰쳐나올 수 있는 진취적인 젊은이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 : 이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