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 라벨갈이, 왜 이렇게 만연하게 됐나

악순환 끊어내기 위해 공정한 토대 만들어야

‘라벨갈이’가 이제야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2월 14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자영업자·소상공인 간담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라벨갈이’가 크게 화두로 떠올랐고, 5월 24일에는 소상공인 살리기 범국민운동추진본부가 출범해 전순옥, 서영교, 맹성규 국회의원 등과 함께 ‘라벨갈이 근절’을 선언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관심이 ‘얼마나 늦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불법 라벨갈이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보도는 20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라벨갈이는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시장 사입 의류를 브랜드 의류로 되파는 경우, 섬유소재의 혼방 비율을 속여 파는 경우(캐시미어 같은 고급 소재 비율을 높이는 등), 제조년월을 속여 신상품으로 파는 경우, 해외 의류를 국산으로 속여 파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2000년도 초·중반에 성행한 라벨갈이는 시장 사입 의류를 백화점 브랜드 의류로 바꿔 판매하는 경우였다. 의류 브랜드가 직접 이를 주도했으며, 시장에서 18만원으로 책정된 옷이 백화점에서는 78만원에 팔려나가기도 하는 등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당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이미지 추락을 염려한 백화점에는 문제의 업체를 퇴출하고 입점 업체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백화점 입점은 브랜드 가치와 크게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의류 브랜드에서 라벨갈이를 직접 하는 경우는 곧 거의 사라졌다. 시장 자체에서 해결한 문제이니만큼 정부에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관련법이나 대책 또한 세울 필요가 없었다. 아니, 없어 ‘보였다.’

한편 2000년대 후반부터는 동대문을 비롯한 시장에 중국산 의류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라벨갈이가 시장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보도에 중국산 라벨갈이 의류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로, 중국산 의류의 시장점유율 증가와 함께 부차적으로 다뤄지곤 했다. 라벨갈이의 흐름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는 시장과 백화점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책임져야할 이름’이 있었던 백화점과 브랜드와는 달리, 시장물건에는 이름이 없었다.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싸고 질이 그럭저럭 괜찮기만 하면 그만인 시장 옷이 중국산에서 국산으로 둔갑하는 일은 큰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문제가 방치된 사이 라벨갈이는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만약 이때 집중적인 관리를 통해 라벨갈이를 근절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정부가 무관심 속에 관리에 가장 효과적이었을 시기를 놓친 셈이다.

초기에 라벨갈이를 잡지 못한 대가는 컸다. 라벨갈이를 통해 값싼 중국산 의류로 경쟁력을 갖춘 시장 상인들이 이익을 챙기는 동안, 정직하게 국산 의류를 팔던 상인들은 도태되어 갔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비슷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라벨갈이 의류를 취급하는 사례도 많아 라벨갈이가 아주 만연하다고 했다. 라벨갈이된 중국산 의류가 해외로 역수출되어 해외경쟁력과 신뢰가 감소했고 시장 악화로까지 이어졌다. 중국에서 직접 물건을 들여와 라벨갈이를 한 후 소매점포에 배급하는 소위 ‘나까마’라는 도매상이 출현해 단속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 도매상의 공급망이 뿌리를 깊게 내려 조직화되어 있고, 라벨갈이 의뢰의 주체가 도매상인만큼 수요자인 소매점포의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의한 처벌 근거는 주로 대외무역법 33조 4항 2호 ‘원산지 표시 손상, 변경 행위’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라벨갈이 의뢰를 받은 공장과 의뢰주인 도매상만 처벌할 수 있을 뿐 이 물건을 판 소매 점포를 처벌하기는 어렵다. 소매점포에서는 ‘라벨갈이 물건인 줄 몰랐다’고 잡아떼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라벨갈이가 성행하는 데 비해 작업공장들이 이득을 크게 보고 있지도 않다. 라벨갈이 의류는 보통 라벨을 떼기 쉽도록 ‘홀치기’를 해서 들여오는데, 이걸 공장 측에서 떼어내고 새 라벨을 달면 한 벌당 300원 정도의 단가를 받는다. 1만 장을 작업했을 때 300만원의 이익을 본다는 계산인데, 공장 입장에서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부차적으로 받는 오더에 불과하다. 한편 기자가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에 문의한 결과, 라벨갈이로 형사 입건된 용의자 중 공장주와 도매상의 비율은 6:4로, 공장주의 비율이 50%를 넘는다. 라벨갈이가 적발되면 행정제재로 3억원 이하 과징금, 1천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으며, 형이 확정되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대가는 적고 위험은 높은데, 어려운 시장 상황 탓에 이런 오더에까지 손을 대는 셈이다. 사법경찰단 관계자는 ‘생업을 잇는 중인데 왜 이렇게 단속하냐’는 민원이 공장으로부터 들어온 적도 있다고 밝혔다.

지금에 이르러서 라벨갈이는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됐다. 시장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소매 점포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라벨갈이 물건을 팔고, 봉제공장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라벨갈이 오더를 받는다. 옆집 물건이 싸니 경쟁하기 위해 자신도 라벨갈이 물건을 들이는 상황이 되고, 이게 반복되면서 시장 상황을 악화시키고 해외경쟁력의 감소로 이어진다. 국내 생산량이 감소하니 공장도 힘들어진다. 상황이 힘드니 더욱 라벨갈이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문제는, ‘경쟁력을 갖추려고’, ‘살아남기 위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불법·불공정 행위가 어려워지고 업체들이 ‘정당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굳이 라벨갈이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보다 공정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가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백현 기자] bhlee@bobbin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