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조명 | 2019년 한국의류학회 제 43회 정기총회 및 춘계학술대회 취재기

지식의 생산과 축적이 끊임없이 이뤄지는 교류의 장
패션·의류학계의 전문가·연구진들은 어떤 활동을 할까? 산업 현장이 아닌, 강단과 연구실을 전장으로 삼아 학문을 ‘생산’하고 있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간의 연구를 교환하고, 산업현장과 의사소통하는 교류의 장이 열렸다. 지난 4월 20일 개최된 ‘2019년 한국의류학회 제 43회 정기총회 및 춘계학술대회’를 다녀와, 그 현장을 전해본다. <편집자주>

보통 교수, 혹은 학자라고 하면 대개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모습이나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기자도 취재 전까지는 이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해야겠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미지가 대개 자연과학, 수학, 역사학, 고고학 등 기초학문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패션·의류학 연구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1년에 두 번 열리는 한국의류학회 학술대회 취재를 준비하면서 무척 들떴다. 학문의 최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강의동 입구에 전시된 ㈜텍스타일러의 제품

한국의류학회는 1976년 창립 이래 학술활동·인재양성을 꾸준히 계속해오고 있는 학술 단체로, 2,300명이 넘는 의류·패션 연구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패션·의류학의 첨단 연구가 실리는 ‘한국의류학회지(1977)’와 패션산업 업계 관련자들에게 유용한 정보, 최신기술 동향을 제공하는 ‘패션정보와 기술(2004)’지를 발행하고 있다. 학술대회 취재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한국의류학회지’의 경우 최근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되어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스코퍼스는 네덜란드 엘스비어 출판사가 2004년에 만든 세계 우수 학술논문 인용·색인 데이터베이스로, 미국 타임(TIME)지의 세계 대학평가가 바로 이 스코퍼스를 통해 이뤄진다. 스코퍼스 등재저널의 경우 한국연구재단에서 국제 공인학술지로 간주하며, 국내 대학 연구력 평가의 척도로 인정되고 있다.

한국의류학회 제 43회 정기총회

특히 이번 등재로 ‘한국의류학회지’는 스코퍼스에 등재된 23,000여종의 학술지 중 clothing(의류)으로 검색되는 단 4종의 학술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한글로도 게재 가능한 유일한 의류관련 학술지가 되어 의의가 높다. 한국의류학회는 매년 4월과 10월에 각각 춘계·추계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번 학술대회는 4월 20일(토) 오전 9시에 서울대학교 83동 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정기총회를 겸해 개최됐다.

학술대회가 열리는 서울대학교 멀티미디어강의동 건물을 들어서자 다양한 패션·의류 관련 연구자들이 참가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건물 입구에는 패션 관련 업체 몇 곳이 제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마치 미니 전시회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3D 프린팅을 이용해 레이스, 액세서리 등을 만드는 스타트업 ㈜텍스타일러, 대량의 원단을 균일한 품질로 천연 염색하는 ㈜비전랜드 등이 참여했고 의류 관련 학술서적을 출판하는 출판사(교문사, 경춘사, 교학연구사)도 발간한 서적을 평대에 전시해놓고 있었다.

학술대회는 정기총회, 주제 강연, 중식 및 포스터 논문 관람, Special topic 강연, 분과별 구두 발표, 포스터 논문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되었다. 행사 시간의 절반 정도가 외부 강연자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 시간이었으며 특히 해외에서 초청된 알폰소 맥클랜던 드렉셀 대학 교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강연자들이 현업 종사자라는 점은 주목할 만했다. 연구에 바쁜 학자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한 해에 단 두 번 있는 중요한 자리에서 패션산업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학술대회 행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정기총회가 1시간 정도 짧게 진행됐다. 전임 회장 박정희 서울대 교수에 이어 고애란 연세대 교수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고, 한국의류학회지의 스코퍼스 등재 소식도 이 자리에서 발표됐다. 이흥수저술상, 영원신진학술상 등 우수 연구자에게 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휠라코리아 김진면 부회장 강연

곧이어 휠라코리아 김진면 부회장의 브랜드 혁신을 주제로 한 강연이 이어졌다. 현업에 종사하는 대기업 전문경영인에게서 직접 강의를 듣는 것은 기자에게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또한 반평생을 강단에 서온 교수와 연구진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이 생소하기도 했다.
김진면 부회장은 휠라의 이미지와 가치를 어떻게 혁신했는지에 대해 다뤘다. 휠라는 100년의 역사만큼이나 중년의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했고, 경쟁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었는데 이를 젊은 브랜드, 10대, 20대의 브랜드로 바꿔낸 것이 바로 김진면 부회장이다.
조직문화 혁신, 헤리티지 강화, 유통망 정비 등, 사실 어떤 관점에서는 진부하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김진면 부회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주제였으나, 그 과정을 직접 이뤄낸 인물이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구체적인 과정을 이야기하니 말의 울림이 달랐다. 한편 질의응답 시간에는 질문자가 휠라의 전망에 대해 언급하며 “휠라 주식을 지금 사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져 한바탕 강당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알폰소 드렉셀 대학 교수 강연

이어 알폰소 교수의 글로벌 리테일의 발전에 대한 주제 강연이 있었다. 리테일의 특성을 재즈 음악에 대비해 표현했으며, 제품 자체만큼 중요해지는 ‘구매 경험’과 제품 판매의 공간에서 종합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공간으로의 변화를 겪는 리테일에 대해 심도 깊게 다뤘다.
이후엔 학생 식당에서의 중식과 강의동 4, 5층에 전시된 포스터 논문을 자유관람하는 일정이 이어졌다. 포스터 논문은 압축된 분량의 논문을 포스터 형태로 게시해 학술대회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업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논문도 다수 있었다.
특히 ‘3D 가상착의 프로그램을 위한 직물 분류시스템 제안’, ‘이미지 기반 SNS에 나타난 애슬레저 룩 디자인 분석’과 같은 논문들이 흥미를 끌었다. 전자의 논문은 3D 가상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에서 직물구현의 정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직물의 역학적 특성을 어떻게 분류할지 제안하는 것으로, 이런 연구가 향후 3D 가상의복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메저차이나 천계성 대표 강연

오후에는 중국의 온라인 기반 빅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돕는 솔루션업체, 메저차이나(MEASURE CHINA) 천계성 대표가 자사 서비스를 소개하며 데이터를 이용한 의사결정의 필요성, 효용성에 대해 설명했다.
천대표는 브랜드의 가치가 작은 디테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며, 브랜드·상품·유통채널과 같은 유형별로 정렬된 데이터(가격·상품구성·고객반응·왕홍)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고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무 단위의 데이터(예를 들면 ‘스킨케어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원료’)도 빠르게 얻을 수 있으므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게 천 대표의 설명이었다.

DMI 네트웍스 박정규 대표 강연

한국 패션 상품을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를 통해 중국에 판매하는 업체, DMI 네트웍스 박정규 대표는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하는 방법과 특징에 대해 강연했다. 라이브 커머스란 유튜브 방송과 같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방송 자체가 컨텐츠이자 광고, 유통채널을 겸하고 있어 이점이 많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었다. 박 대표는 라이브커머스가 차세대 유통채널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영상을 통한 실시간 의사소통이 고객의 신뢰를 깊게 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소규모 업체도 충분히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규 대표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모든 강연이 끝났는데, 그 동안 내내 강연을 듣는 연구자들의 진중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오후 3시 반까지의 강연이 끝나고 나서야 의류학회 분과별 구두 발표가 진행됐다. 발표는 각 분과별로 별도의 강의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탓에 모든 발표를 들을 수 없어 상당히 아쉬웠다.

 

한국·아시아복식분과 구두발표

한국의류학회의 분과는 의류소재시스템분과, 패션마케팅분과, 의류설계생산분과, 패션디자인분과, 한국·아시아복식분과의 5개 분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 관계상 제대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던 건 의류설계생산분과의 ‘3D 인체데이터를 활용한 남성 정장재킷 패턴 개발 연구(신경희 동아대 의상섬유학 박사, 서추연 동아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와 패션마케팅 분과의 ‘소셜미디어 환경에서의 패션게시물에 관한 소비자 반응(최우림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대학원생, 박민정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교수)’ 이 두 발표 뿐이었다.
두 논문 다 패션 현장 밀접한 연관이 있어 흥미롭게 들었고, 연구 주제가 현장에서는 직관적·감각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영역에 있는데도 그 세부 항목들을 굉장히 체계화·수치화함으로써 보다 보편적·분석적·통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고 있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소셜미디어 관련 발표의 경우 제시하는 게시물을 ‘사진유형: 구체적배경, 단색배경’, ‘텍스트 유형: 서사텍스트, 설명텍스트’로 나누고 이 게시물의 수용자를 ‘언어적 이해자’, ‘시각적 이해자’ 등으로 분류해 각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그 가설을 검증하는 내용으로, 체계화된 실험을 통해 새로운 결론을 얻어내는 그 방법론이 탄탄하고 구체적이었다. 또한 연구 과정을 상세히 밝힘으로써 있을 수 있는 오류나 한계가 어떤 요소로부터 기인하는지 알 수 있도록 되어있으므로, 결론의 단순한 참·거짓을 넘어서 지식의 축적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패션디자인분과 구두발표

오후 5시까지의 발표가 끝나고, 포스터 질의응답 시간, 폐회식 등 학술대회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남았다. 사실 포스터 질의응답 시간은 딱딱한 학문의 장이라기보다는 연구자들끼리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고 친교를 다지는 사교의 장으로써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학술대회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최신 연구의 흐름을 확인하고 새로운 과제를 찾아내는 것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바쁜 연구자들이 시간을 쪼개어 전국에서 모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취재 전 학술대회에 대한 이미지는 ‘현장과 다소 동떨어져 끊임없이 진리에 가까운 지식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모임’같은 느낌이었으나, 실제로 취재하고 나니 이는 막연한 이미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산학교류’라는 한 단어로 대변되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었고, 현장과 학문이 동떨어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학계와 교류하는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극소수의 엘리트에 그치는 경향이 보여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보다 넓고 열려있는 산학교류가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이 기사 또한 그러한 교류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취재: 이백현 기자] bhlee@bobbin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