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한인 봉제기업 탐방 | CTY TNHH MAY SUN KYOUNG VN / 선경어패럴

현지화, 생력화로 돌파구를 찾아라 <베트남 호치민>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봉제기업들은 요즘 경기 사정이 예전같지 않다. 오더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특히 비수기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1차 벤더들이야 오더가 줄어들면 외부 하청생산을 줄이면 되지만 2차 협력업체들은 천수답식 경영이라 어디에서 오더 끌어오기도 힘들다. FOB 거래 위주의 1차 벤더들의 사정은 그럭저럭이지만 최근 CMT 위주의 2차 벤더들 중에 위기에 처한 업체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점점 많이 흘러나온다. 급기야 공장 매각을 외부에 공고하고 회사 정리 절차에 들어간 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2차 협력업체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잘 되는 공장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 임금이 오르고 물가도 계속 오르지만 임가공비는 좀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도 잘 버텨나가는 기업들은 신기할 정도다. 베트남 호치민시 12군 소재의 선경(SUN KYOUNG VN)도 어렵지만 꿋꿋하게 공장 운영을 지속해 나가는 업체 중 하나다. 한솔의 유니클로 제품 전문 협력업체인 동사를 찾아 이경선 대표를 만나 보았다. <편집자주>

 한국에서 주로 어떤 봉제를 했나요.
동두천에서 미국 풋볼리그인 NFL과 농구리그인 NBA의 선수용 유니폼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봉제업체를 운영했습니다. 풋볼과 농구리그 팀이 각각 16개팀이고 원정과 홈경기용 팀복을 각각 생산한다고 보면 16×4 즉 64가지 종류의 팀복을 생산하게 됩니다. 여기에 선수별로 등번호를 구별하면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요. 양 리그의 선수복은 흔히 가짜와 진짜로 구분하는데 선수용에 버금가는 고가 제품은 ‘어센틱(authentic)’이라고 하고 저가 이미테이션류의 제품은 ‘레플리카(replicas)’라고 흔히 이야기 합니다. 저희는 당시 리복의 오더를 받은 국내 벤더사의 주문으로 어센틱 제품을 주로 생산했습니다.

 고가 선수복 생산으로 한국에서 내공을 키우고 베트남으로 건너와 성공했다고 보면 되나요?
동두천 공장은 1개 라인에 50명가량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2007년도에 베트남으로 넘어왔는데 오기 전까지 10여 년간 팀복을 생산했고 보통 하루 1개 라인에서 1천 장에서 1천 2백 장 가량을 생산해야했습니다. 이 정도 물량이 나와 주지 않으면 바로 적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3일에 1개 팀의 작업이 완료되어야 하는데 머릿속에는 수많은 종류의 팀복 스타일이 질서 정연하게 입력되어 있어야 하고 이것들을 순차적으로 세심하게 관리하며 물 흐르듯 공장을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1개 라인에는 소매, 몸판, 합복조로 나뉘어 공정을 관리하는데 3개조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뤄 톱니가 맞물리듯 생산해야 합니다. 팀복은 관리가 얼마나 꼼꼼한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됩니다.

 2007년도에 베트남으로 진출하셨는데 상당히 늦은 것이 아닌가 보이는데 어떤 이유인가요?
환경변화로 어쩔 수 없이 베트남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동두천 시절이 제 봉제인생에서 다시 맞을 수 없을 황금기였습니다. 당시 국내에는 미국 양대리그 팀복을 생산하는 경쟁 상대가 없었습니다. 경 쟁 상대가 없기 때문에 단가도 높았고 오더도 풍부해 공장 관리만 잘 해나가면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팀복 자체가 품질이 까다롭고 종류가 많기는 하지만 익숙해지면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국내 생산이 힘들어지면서 거래 업체들의 권유로 베트남에 진출했습니다.

최신 자동연단기 및 자동재단기 설치로 재단라인의 인력 절감과 정확한 재단이 가능해져 품질 향상과 생산성이 높아졌다.

 지금은 ‘유니클로’ 제품을 생산하는 한솔의 협력업체로서 대활약 중이신데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 한솔과는 공장 규모와 오더에 따른 캐파 비중이 안맞아 유니클로 오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장도 깨끗하고 품질 수준도 높아서 전량 유니클로 오더로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유니클로 작업으로 전환한 후에는 평가가 좋아 오더를 우선 배정받을 수 있는 공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품질과 생산성이 웬만큼 나와 주었고 관리가 좋은 공장으로 평가되어 우선적으로 오더를 배정해준 덕분에 비교적 잘 적응했습니다.

 베트남 봉제환경이 녹록치 않음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공장으로 주변에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들었는데 비결이 있나요?
저희는 단순 임가공 공장으로 17개 라인에 1200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도 여타 공장들처럼 지금 쉽지 않은 상황이고 솔직히 어렵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만드는 유니클로 니트류, 그 중에서도 재킷류는 고가 제품이 아닙니다. 일반 학생들도 부모님 용돈 아껴서 살 수 있는 정도의 옷입니다. 재래시장 옷가게 정도의 가격 수준이지만 품질은 웬만한 중가 브랜드 제품 뺨칠 정도로 따지는 것이 이 제품입니다. 품질 허용 기준이 불량률 0.3% 미만입니다. 천 장 중에서 3장의 불량품이 나오면 전량 새로 작업하고 전수 검사 받아야 합니다. 이 정도 수준의 품질 검사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극도로 신경 써야 합니다. 다행히 관리가 잘 된 덕분에 저희는 타사에 비해 본사에서 진행하는 검사가 까다롭지 않습니다. 그동안 오더주가 원하는 품질과 결과를 내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은 관리에서 판가름 난다고 봅니다.

인력 비중을 낮추기 위해 자동화 장비의 도입 비중을 더욱 더 높일 계획이다.

 그렇다면 그 관리에 특별한 것이라도 있나요?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외국인입니다. 외국인들이 현지인들을 밀접하게 부딪치면서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과 같은 현지인이라면 가능하겠지요. 같은 자국민끼리는 현장에서 문제되는 일로 얼굴 붉히며 언쟁할 수도 있지만 이방인과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현장에서는 현지인 관리자들이 이런 밀착 관리를 해야 합니다.

 현장 관리의 한 예를 들어 주시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의 오더주는 특히 제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상당히 우려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협력업체들에게 특히 주의를 강요합니다. 이물질은 벌레라든지 실밥 등 공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벌레가 많은 베트남에서 완제품이 이런 것들이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보통 신경써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현지인들은 생산현장에서 음식물을 먹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음식 역시 장소를 특별히 가리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지요. 공장 내에서 취식하면 개미와 같은 벌레가 꼬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습성을 바꾸기 위해서 공장 차원에서 수시로 교육하고 때론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내 개선운동에 관한 구호까지 외치며 의식 전환을 꾀하고 있지요. 저희들은 이런 공장 내 상황을 수시로 모니터하고 현지인 관리자를 통해 문제 요소를 찾아내고 해결하게 합니다.

이경선 대표

 해외공장들의 현지화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현지화를 위한 필수 요소를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합니다. 제가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사람과 기계에 대한 투자입니다. 봉제공장에서 가장 필요한 투자가 바로 이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기계는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일반 오버록을 당시 800만원대에 달하던 상하송 오버록으로 모두 교체해준 적이 있습니다. 상하송으로 바꾸자 눈 감고도 봉제하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사람에 대한 투자는 관리자 양성이 중요합니다. 저희는 각 라인별로 총반장과 반장 2명을 전 라인에 각각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들 관리자들은 외부 수혈이 아닌 우리 공장에서 양성된 그야말로 순수 토종 인력들입니다. 이들의 역할은 라인이 항상 일정한 수준의 품질과 생산성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라인 관리나 실밥 정리 등 소소한 작업을 하다가도 결원이 생기는 경우에는 반장이나 총반장이 직접 재봉기 앞에 앉기도 합니다. 이들 덕분에 각 라인에는 항상 예측 가능한 품질과 수량이 나옵니다. 라인 관리자들은 다른 직원들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을 보였기 때문에 선발된 자원들입니다. 회사에서는 그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금전적으로도 더 우대해주었고 기회도 더 많이 부여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실 이들이 우리 회사의 핵심인력이지요. 우리 공장은 한국인이 저 포함해 4명밖에 없습니다.

 호치민 시내, 그것도 임금 수준이 높은 12군 지역에 공장이 있습니다. 임금이나 물가가 높아 공장 운영에 불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곳은 베트남 전체를 따졌을 때 봉제업종에서는 임금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입니다. 웬만큼 벌어서는 임금 주기도 벅찬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굳이 대도심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도시 거주 인력들이 아무래도 농촌출신 인력보다 우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눈치도 빠를 것이고 좀 더 영악하지 않을까요. 이런 사람들을 좀 더 빨리 가르쳐서 생산에 투입할 수 있다면 임금 더 주고도 이익이라고 생각했지요. 물론 임금은 최하급지에 비하면 상당히 높습니다. 호치민 시내 지역의 웬만한 공장과 비교해도 더 높게 주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가 만드는 제품은 미주 수출에 비해 가공임 수준이 높습니다. 라운드티를 예로 들면 미주 수출 제품이 순수임가공 기준으로 0.4달러 수준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희는 0.7달러도 아니고 0.9달러는 되어야 공장 운영이 가능합니다. 가공임이 높아도 그 만큼 품질 관리에 인력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엄청난 이윤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니클로 품질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전처리도 힘들고 완성이나 검사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인력도 그만큼 많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시내에 있는 공장들은 서비스 산업이나 유흥 업종 등으로 기능 인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임금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임금을 많이 줄 수 있는 방법은 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유니클로는 미주 바이어에 비해 작업 허용 시간이 많습니다. 미주 수출 바이어가 주 54시간인데 비해 주 60시간을 허용해 줍니다. 연장 근무 수당과 각종 식사보조비 등을 합치면 타사보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인력 붙들어 두기에는 효과가 있습니다.

정밀재단을 통해 봉제라인의 재단 수정 보조인력을 줄여서 많은 인력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었다.

 앞으로 베트남 봉제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실 저희도 어렵습니다. 물량이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적을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품질이 잘 나오는 공장은 놀지 않게 해주는 것이 거래사의 정책이라 노력한 만큼 물량을 확보할 수는 있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저는 작년에 노조를 4번 만나 협상을 했습니다. 그들을 만나 인건비는 올라가고 물가도 5% 인상되었는데 임가공비는 3년 전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임금을 올려주기 힘들다고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저희 회사는 매출, 수익, 회계 등을 투명하게 직원들에게 오픈합니다. 직원들도 가공임 다 알고 작년에 몇 장 생산했는지, 인건비가 얼마나 올랐는지 다 압니다. 노조에 앞으로 3년은 임금 인상을 억제할 수밖에 없으니 협조해 달라고 했습니다. 만약 이 제안을 수용하지 못하면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고 솔직히 말했지요. 그들도 수긍하고 협조하겠다는 뜻도 들었습니다.

 앞으로 전개되는 모든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할 계획입니까?
먼저 인원을 줄여나갈 계획입니다. 현재 1200여명 가량인데 앞으로 1120명까지 줄일 계획입니다. 현재 저희 공장의 인건비 비중이 연간 1인당 평균 7400달러가량이 소요됩니다. 워낙 인건비가 높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각종 부대비용도 매년 오르고 있습니다. 인력 비중 줄이고 생력화, 자동화로 방향을 잡아야합니다. 지난해 재단라인을 자동화했습니다. 자동연단기 2대와 자동재단기 1대를 설치했습니다. 그 결과 정확한 재단물이 봉제라인에 투입되면서 시접봉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위 ‘고다찌’라 불리는 재단물을 수정하여 가위로 잘라주는, 라인당 2명씩 있던 인원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17개 라인에 2명씩 총 34명의 인력이 줄었고 연단, 재단사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인력 절감 효과를 보았습니다. 인력 절감 외에는 단기적으로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3년이 베트남 봉제의 마지막 기회의 시간으로 봅니다. 그 이후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견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북한이 개방된다면 그곳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취재: 李相澈 局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