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송희 | 필리핀 대경어패럴 대표 / 한국투자자협의회 회장

“필리핀 봉제 매력에 꽂혀 까비테를 사수합니다”
필리핀 카비테 공단(Cavite Economic Zone)에 둥지를 틀고서 숙녀복을 생산, 수출하는 한국 봉제업체, 대경어패럴의 원송희 사장을 지난 3월 초, 경기도 의정부에서 만나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 그는 필리핀 현지에 제2공장 설립을 위해 필요한 각종 봉제설비의 구매 상담차 내한한 것이라 했다. 필리핀에 나가 있던 봉제기업들이 대체로 밖으로 빠져나오는 형국인데 오히려 필리핀을 고집하며 꿋꿋이 지키고 있다는 건 그야말로 뉴스다. 촉이 발동한 기자는 출국 전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필리핀 내 한국기업들의 세무, 노무 등 관련 업무활동을 도우며 한국기업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89년 설립된 한국인투자자협의회(KIAC)의 현 회장이기도 한 그를 며칠 뒤 경기도 양주 인근에서 다시 만났다. [인터뷰 : 차세호 편집주간]

= 필리핀 진출 계기는?
1989년 필리핀에 진출한 ‘장은실업’의 현지 법인장으로 발령받아 필리핀에 첫발을 디뎠다. 장은실업은 GAP 오더를 생산하는 니트의류 전문 벤더다. 장은실업 현지법인장을 맡고 있으면서 소규모 공장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은실업이 한솔섬유에 매각되면서 법인장을 내려놓고, 귀국 대신 카비테 공단에 눌러앉았다. 2003년, 기존 공장에 투자금을 보태 공장 운영에 전념하게 됐다. 그게 지금의 ‘대경어패럴’이다. 카비테 공단은 한국, 일본, 대만, 미국 기업의 입주율이 높은 필리핀 내 최대 공단으로 마닐라 남쪽 3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마닐라항과도 가까운 거리라 봉제공장 입지조건으로는 최적이다. 섬유, 봉제, 전자 포함해서 카비테 지역에 179개 업체 중 한국인투자자협의회 회원사는 86개사, 봉제업체는 24개사다.

= 투자 규모와 바이어는?
처음 시작 때 20억 가까이 투자했다. 생산설비에 욕심이 많은 편이다. 좋은 설비로 갖추다보니 초기 투자규모가 컸다. 모든 생산시스템을 미국 바이어인 Kohl’s가 원하는 수준에 맞췄기 때문에 공장 이벨류에이션이나 검사 시 별 문제없이 통과됐다. 우리 공장이 샘플공장이 되어 다른 Kohl’s 오더 하청업체들이 공장 견학을 올 정도다. 바이어가 공장시설을 매우 좋아하는 이유다. 교육이 필요할때면 바이어는 늘상 공장 쇼룸을 이용한다. 번거롭긴 하나 그래도 바이어에게 인정받아 기분 좋다. 지금껏 바이어한테 클레임 한번 받아 본 적 없다. 10년 가까이 신뢰가 쌓인 탓이다. 바이어는 오더 배분 시 우리 공장을 늘 우선시 한다. 캐파가 안될 때만 타국으로 보내진다. 이러기에 여건만 맞으면 오더 걱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대경어패럴 카비테 1공장

= 필리핀의 봉제 경쟁력은?
얼마 전에 베트남을 다녀왔다. 베트남의 임금 상승 수준이나 노동법 관련 사항 등 여러 봉제환경을 필리핀과 비교해 보았는데 필리핀이 결코 주변국보다 가격이 높지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는 각 나라 특성이 제각각인 것처럼 경쟁력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필리핀에서 정말 어려운 불황기를 겪어왔지만 지금은 환경이 많아 개선됐다. 필리핀은 노워크 노임금이다. 그런다고 가격이 맞지 않다 하여 라인을 멈춘다는 것은 아니다. 혹시 있을 수 있는 가동 멈춤에 한결 부담이 덜하다는 얘기다. 반면 베트남의 경우 일을 안해도 월급을 줘야 한다. 이런 차이가 있어 내가 보기엔 피스당 단가를 봤을때 필리핀과 비교하면 높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다고 본다.

= 필리핀의 인력상황은?
충분치 못하다. 먼지가 안나는 전자쪽을 선호해 봉제쪽은 항상 사람이 부족한 편이다. 이번에 새로 짓는 2공장의 위치도 차량 정체로 출근이 힘든 인원들을 배려해 선정했다. 지금 있는 까비테 1공단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땅을 임대해 사용하다보니 부담이 크다. 2공장은 땅을 매입해 직접 건축하기 때문에 1공장에서 매월 지출되는 약 3천만원의 임대료가 절약된다. 모든 면에서 그만큼 경쟁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절약되는 돈으로 직원 복지시설을 늘릴 생각이다.

•오는 6월부터 가동 예정인 카비테 2공장

= 복지에 대한 마인드?
2003년 까비떼공단 한인봉제협회 1대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경기상황이 매우 어려울 때였다. 대개 공장을 임대해 사용하다보니 몸만 빠져 나가면 된다는 식으로 일부 한국인 봉제공장의 야반도주가 이어져 분위기가 어수선 했다. 나 역시 당시에 갈등이 일었다. 그러나 한인봉제협회 회장이 무책임하게 도망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도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절반의 월급만 받고 일을 하겠다”며 나를 붙잡는 직원들의 눈빛에 이끌려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다른 회사는 다 노조가 있는데 우리 회사는 노조없이 잘 돌아갔다. 직원들은 나를 두고 까비테 대통령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 따라 주었다. 이들이 좀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복지로 보답할 생각을 굳혔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들 돌보느라 일할 수 없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2공장을 짓고 나면 학교설립을 구체화해 나갈 생각이다.

= 봉제인력 숙련도는?
숙련 인력이 많으며 숙련 습득 속도도 빠르다. 작업인원의 연령대는 18~60세까지 다양하다. 35~40세 중반이 가장 많으며 거의가 기혼자다. 그래서 저희 회사는 패밀리들이 많다. 딸, 아빠, 엄마, 이모들까지… 식당에서 7~8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으면 십중팔구 한 식구들이다. 가족 중에 애경사가 생기면 한꺼번에 결근을 하게 되는 게 단점이긴 하나 장점이 더 많다. 인원이 빠져나가는 이유 중 보육 문제가 크다. 50~60대 숙련 인력들은 손주 돌보느라 못 나온다. 그런 기술인력을 끌어내야 한다. 이처럼 안정적으로 공장을 운영하려면 학교를 비롯 복지시설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또한 필리핀 공장 운영에 있어 최고의 장점이 작업자들 모두 영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오더이다보니 작업지시서가 영어다. 누구한테 물어볼 필요가 없다. 작업지시서만 툭 던지면 작업자들이 알아서 시행한다. 오히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체크해서 물어보기도 한다. 바이어들도 필요시 직접 작업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한다. 불량없이 일이 잘 될 수밖에 없다.

= 필리핀 봉제경기는?
일반 산업쪽은 성황기라 볼 수 있으나 봉제는 인원때문에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한국인투자자협의회 회장 자격으로 작년 11월 정부기관 리셉션에 참석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정부측 관계자는 섬유 봉제분야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돈 벌기 위해 타국에서 무비자로 숨어 일하는 필리핀인들을 정부가 나서서 최대한 데려올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빨리 그리고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10~15년 동안은 필리핀 봉제가 활황을 맞게 될 것이다.”

= 한국인투자자협의회(KIAC)에서 하는 일은?
한국투자기업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바람막이 역할을 하며 지역사회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등 사회공헌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투자자들을 정부에 알선해주고 투자기업의 안전 유지와 보호, 그리고 한국 인력을 현지 회사에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이 협의회 원년 멤버이며 지금은 회장을 맡고 있다.

= 현지 노동법은 까탈스럽지 않나?
외국기업들에게 제약이 아무래도 많다. 사실 처음엔 겁을 많이 냈다. 하지만 그들의 법에 맞춰가니까 편하다. 노동법이란게 다 그렇듯 요구하는 100을 다 주면 사업 못한다. 법의 틀안에서 어느 정도 조율하면 해결 가능한 일들이다. 외국투자기업이 견디지 못하고 문 닫으면 실업자만 생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까탈을 부리진 않는다.

= 원부자재 수급은 어떻게?
가장 어려움이 많다. 현지 수급이 제대로 안되어 아쉬운 대목이다. 그것만 된다면 베트남보다 봉제환경이 낫다. 우린 임가공만 하기에 중국이나 한국에서 컨테이너베이스로 매주 원단을 실어온다. 한국엔 자주 나오는 편이다. 오더 상담도 해야 하고 자재나 부속, 기기 구매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 봉제와의 첫 인연은?
대학에서 항공정비를 공부하다가 진로를 바꿨다. 막연히 오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사람 여럿 데리고 일할 수 있는 게 뭘까 궁리하다가 봉제공장을 떠올렸다. 마침 매형이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더욱 봉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람들은 봉제를 기피한다지만 난 처음부터 재미를 느꼈다. 믿을지 모르겠으나 다시 태어나도 봉제업을 선택할만큼 내겐 매력적인 일이다. 막 봉제에 입문할 때가 1984년도다. 딸이 그해 태어났다. 아들은 88년생이다. 세월은 흘러 딸아이는 결혼했고 아들은 전도유망한 영화배우로 컸다. 이후 무역회사에서 영업과 생산을 두루 담당했다. 재단을 배울 필요성을 느껴 라사라학원에 등록, 패턴을 공부하기도 했다. 또 도로상에 굴러다니는 것에 대한 운전면허증은 다 갖췄다. 뿐만이 아니다. 골프 역시 프로자격증을 두가지나 갖고 있다. 이처럼 궁금한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부족하면 채워야 할만큼 욕심이 많다. 2공장을 짓기 위해 터파기 공사할 때다. 어느날 중장비 기사가 속을 썩이며 무단 결근을 했다. 포크레인 키를 찾아내 밤새 땅을 팠다. 다음날 아침에 예약해 놓은 레미콘이라 땅을 파놓지 않으면 시멘트를 부을 수가 없기에 꼬박 밤을 새워 해결해야 했다. 봉제현장도 마찬가지다. 오너가 현장을 알아야 한다. 지금껏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재단, 봉제, 완성에 이르기까지 두루 공부했기에 가능했다.

•원송희 대경어패럴 사장은 현재 한국투자자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 특별한 취미생활
어릴적부터 바이크를 좋아했다. 두발 달린 것이라 위험하다 했지만 이후 오토바이에 끌려 무역회사에 다닐 때도 오토바이로 출퇴근 했다. 양복은 껴입던지 뒤에 매달고 가서 화장실에서 갈아 입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있고, 핸드폰이 있고, 이메일로 전송하고, 택배로 보내고, 퀵서비스를 부를 수 있어 업무가 빠른데 그땐 샘플 원단 픽업도 직접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남들 하루종일 걸릴 일을 나는 오토바이로 금방 해치웠다.지금도 남자들의 로망이기도 한 할리데이비슨을, 기종 모델별로 필리핀에 3대, 한국에 3대를 두고 틈을 내어 라이딩을 즐길 정도로 오토바이 매니아다.

= 기기 메이커에 전하고 싶은 말은?
기계 팔 때의 적극적인 마인드가 사후관리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들이 개발한 기계를 아끼고 사랑하듯 판매된 기계에도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가끔 기기메이커에 전화해 궁금한 것을 물어 볼 때가 있는데 더러는 귀찮게 생각하고, 바쁘다며 답변을 미루고, 연락주기로 하고선 기다려도 답이 없는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또 봉제현장에서 효율성 있게 쓸 수 있는 기기 개발 아이디어를 주면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훈수 두지 말란 식이다. 사람 인연이란 건 모르는 거다. 한번하고 말 사업도 아닌데, 좀 더 살갑게 소통했으면 한다. 내일의 빅 고객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