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지역 탐방 | 미싱판매점 편

서울 중랑구는 현재 서울시 내에서 봉제업이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이는 과거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에 번성했던 봉제공장들이 도시개발 및 지역상권의 발전에 따라 밀려나 중랑구 면목동 일대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크다. 중랑구 내의 사업체 수는 2,523개, 종사자 수는 12,494명에 달하며, 사실 이 수치는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에 한한 것으로 실제 봉제업체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업자 등록을 내지 않은 업체들 까지 합산하면 보통 5,000~7,000개 까지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업자 등록이 되어 통계에 잡힌 업체만 두고 계산하더라도 중랑구 내에서 봉제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제조업체 3,491개 중 2,523개로 72.3%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전체 중 점유율은 11%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2016년에 중랑구 면목동 일대를 면목패션(봉제)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하고 2017년 1월에는 봉제 스마트앵커 시설 건축을 결정하면서 이 지역 봉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12월 초 중랑 봉제업을 두루 돌아보며 조망하는 ‘중랑구 지역 봉제산업 대 탐방’을 기획함으로써 이 일대의 봉제 현황을 조명해 보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초 국내 봉제 최대 밀집 지역인 중랑구에 소재한 미싱상 업체 탐방을 시도했다. 예상했지만 봉제 경기 불황으로 많은 업체들이 판매부진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계절은 다시 바뀌고 올 봄을 묵묵히 준비하는 업체들은 조용히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많은 미싱상이 소재한 곳이지만 시간과 지면 사정으로 일부 업체만 소개한다. <편집자주>

초겨울 맹추위가 무서운 연말이다. 추위로 한껏 움츠린 몸으로 종종 걸음치는 인파들이 오가는 서울 면목동 사가정역 인근 거리. 봉제업이 번성했던 예전의 흥청거림은 잊었지만 아직도 과거의 명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상가와 각종 음식, 주점들이 밀집해 있는 역세권 상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용마산역을 기점으로 7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연결되는 상봉역을 지나 태릉입구역까지, 그리고 중랑교를 넘어와 망우로를 지나 망우동 고개까지 이르는 중랑구의 주요 교통 요지 인근으로는 봉제업이 아직도 번성 중이다.

시, 군, 구단위 지자체 가운데 서울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봉제업체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 중랑구다. 주요 도로 인근의 비교적 큰 건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한 건물에 봉제업체 한 곳 이상은 대부분 입주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입주업체가 모두 봉제업체인 건물도 심심찮게 보인다. 한 집 건너 한 곳이 봉제업체라는 말이 아직도 통하는 곳이 이 지역 일대가 아닌가 싶다. 중랑구 면목동 인근 지역보다 봉제가 먼저 번성한 지역은 중랑천 건너 동대문구 장안동 지역이다. 장안동은 면목동과는 그야말로 지척의 거리다. 과거 60~70년대 서울 중심부의 동대문 상가에 있던 봉제공장들은 도심의 발전과 도시 개발 정책에 따라 대부분 외곽으로 밀려났다. 동대문 상권이 급속히 개발되기 시작하고 대형상가가 형성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공장들은 인근 종로구 숭인, 창신 등지로 밀려났다.

한집 건너 한집은 봉제공장, 아직도 봉제업 여전히 성행

상권과의 접근성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했고 이 지역으로 몰려 들어간 업체들로 인해 일대는 소규모 봉제공장 집적지가 되었다. 숭인, 창신이 아닌 동대문구 장안동 일대로 이전한 업체들도 꽤 많았다. 그런데 동대문구 장안동은 동대문 상권과의 접근성은 좋았지만 80년대부터 하나둘 유흥업체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부쩍 높아졌다. 봉제업은 인력 확보가 쉽고 건물 임대료가 저렴해야 하는데 유흥가 조성이라는 엉뚱한 유탄을 맞아 밀려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이했다. 또한 청계고가가 있을 때에는 동대문 상권과의 접근성이 좋았지만, 고가가 철거되면서 교통의 장점도 많이 사라졌다.

결국 장안동 일대의 주점, 안마, 이발소와 같은 유흥 업종에 밀려나 많은 봉제공장들이 임대료가 싼 인근 면목동 일대로 대거 이전했다. 중랑구 일대가 봉제 밀집 지역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요인에는 이런 흐름들이 있었다. 현재 중랑구에는 약 3천 개소의 봉제공장이 일하고 있으며 1만 명 이상의 종사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중랑구에서 사업자를 등록한 업체 중 약 70%에 해당하는 비율로 가장 큰 산업 비중을 차지한다. 봉제 가는 곳에는 미싱판매업자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가게 되어 있다. 중랑구 지역으로 봉제업이 이동하면서 미싱판매업체들도 대거 이곳으로 유입되었다.

일괄 업무처리가 가능한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승일APC 자체사옥 전경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약 60여 업체가 이 지역에 종사하고 있다. 중랑구 지역의 미싱업체는 이 지역에서 아예 터를 잡고 있었던 업체 외에 외부에서 유입된 업체들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미싱 중심가인 을지로 4가에서 활약하던 업체들도 이곳으로 많이 이전했다. 그만큼 중랑구 봉제산업이 크고 번성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중랑구에는 봉제자동화 기기 전문 제조업체로서 오랜 시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승일APC(대표: 황일섭)가 자리 잡고 있다. 동사는 평단추 자동 공급기를 비롯해 각종 특수용도 휴징 프레스 등을 제조 공급한다.

승일APC 황일섭 대표

봉제현장에서 오랜 기간 기술을 닦은 황대표는 ‘동보자동화’라는 상호를 내걸고 출발한 이후 지난 91년부터 ‘승일(SEUNGIL) 브랜드로 각종 자동화 기기를 생산, 보급하고 있다. 변변한 자동화 장비가 없던 시절 단추달이 작업은 사고의 온상이었다. 단추를 손가락으로 잡고 끼워 봉제하는 방식이 주를 이룰 때라 미싱 바늘에 손가락을 찍히는 끔찍한 사고들이 종종 발생했다. 그 당시 이런 사고를 막아보기 위해 개발을 시도한 것이 지금의 동사를 이끌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각종 자동화 장비를 순차적으로 개발했는데 최근 컴퓨터 제어에 의한 단추구멍 인덱스와 전자동 단추달이 인덱스, 지능형 주머니 달이기 등이 출시되어 전시를 비롯해 봉제현장 등에서 좋은 호평을 받고 있다.

봉제자동화 기기의 산실, ‘승일 APC’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경쟁력 확보

유일미싱 외부

현재 황일섭 대표는 한국봉제기계공업협회 부회장으로서 국내 봉제기계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상봉역과 상봉터미널 인근의 봉우재로변에 이 지역 미싱상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유일미싱(대표: 손인수)이 자리 잡고 있다. 넓은 매장에는 한때는 고가로 이름 꽤나 날린 일제 중고 재봉기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유일미싱은 봉우재로 인근에 위치한 미싱상 가운데서도 비교적 규모가 있는 미싱업체이다. 각종 재봉기, 주변기기 도소매를 비롯해 우븐, 니트, 가방 등 전 분야의 아이템에 다양한 재봉기를 취급하고 있다. 항상 바쁘다는 손인수 대표는 외근 중이고 부인이 매장을 지키고 있다. 봉우재로 인근에만 10여 업체 이상이 성업중이라며 중랑구의 미싱업체들이 많지만 지금은 다들 힘들어 한다고 이야기 한다.

“한 때는 미싱업체들이 많았어도 다들 제 밥벌이 하면서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봉제경기 악화로 너나없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근래 20년을 놓고 보았을 때 지금만큼 참혹한 경기 불황은 없었습니다. 거래하는 봉제공장들은 일감이 줄어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그나마 남은 업체들도 끼니 걱정하며 하루하루 가동하는 지경입니다. 봉제 경기가 없는데 미싱업체간 경쟁은 더 치열한 편입니다.” 그는 경기가 이렇게 침체되고 봉제업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정부 당국의 책임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업의 기를 살려주어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기도 살아나는데 지금은 다들 움츠리고 풀이 죽어 있어요.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감옥가고 그 기업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현실에서 어떤 기업이 신나서 투자하고 일자리 만들지 의문이 듭니다. 정말 이러다가 다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유일미싱 매장 전경

최근 경기 상황에 대해 기자에게 꼭 “다 굶어죽게 생겼다”라고 써달라며 웃는다. 취재 당시 북한의 개성공단 일부 시설 가동 문제가 한 일간지를 통해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 9월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한 이후 북한이 개성공단 시설 일부를 재가동해 생산한 제품이 평양과 중국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이 대북전문매체인 일본 ‘아시아프레스’를 인용해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한 것이다. 개성공단 재가동이 남한의 전기와 수도 공급 없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느냐며 묻는다. 이 사건 보도에는 개성연락사무소 개소 이후 일부 시설에 대한 전기와 수도 공급이 이뤄지면서 공단 가동이 재개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다. 개성에서 만든 제품이 유통되면 결국 국내 공장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중랑구에서 이 업종에 매진한 유일미싱은 그나마 다른 업체들보다는 사정이 나을 것이다.

경기 불황에 봉제업 일감 없어, 기업들 기살리기 정책 필요

드림킹 전경

한때는 정말 정신없이 바쁠 때가 있었다며 다시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다며 걱정한다. 불황임에도 목소리 만큼은 활기차고 자신감 있는 안주인의 배웅 인사를 받으며 다시 봉우재로로 나왔다. 망우로를 지나 서일대학교 정문 인근에는 드림킹 대우미싱(대표: 김광연)이 자리 잡고 있다. 대우미싱 역시 이 지역 대표 미싱업체이기도 하다. 동사 역시 바쁜 사장님을 대신해 김승이 과장 등 직원분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드림킹은 그야말로 꿈의 재봉기를 만들기 위해 동사가 자체 브랜드로 등록한 이름이다. 김대표가 오랜 세월 업계에서 종사하면서 갈고 닦은 기술과 노하우가 고스란히 접목된 재봉기이다. 드림킹 재봉기는 흔히 이야기하는 깔끔한 ‘실조시’를 내기 위한 별도의 조작을 할 필요가 없는 재봉기이다.

드림킹 직원들

기존 재봉기는 원단의 종류, 혹은 원단 두께에 따라 실텐션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알맞게 조절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이 재봉기는 그럴 필요가 없다. 설정된 값으로 어떤 봉제물을 작업해도 적정 품질이 생산된다. 초보자도, 기능이 미숙한 작업자도, 기계 조작에 능하지 않은 작업자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얻을 수 있다. 동사가 이 재봉기를 개발한 것은 국내 봉제산업의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인력이 갈수록 고갈되는 현실에서 미숙련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재봉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 끝에 나온 재봉기가 바로 드림킹이다. 꿈의 봉제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 현장을 부지런히 다니는 김광연 대표를 대신해 매장에는 젊은 직원들이 재봉기 조립 수리에 여념이 없다. 드림킹의 차별화, 혹은 경쟁력이라면 매장 근무 인력의 평균 연령이 낮다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매장 안은 작은 공간이지만 활기가 돈다.

동사는 예전 중랑천 인근에 매장을 가지고 있다가 근래 이곳으로 이전해 왔다. 특히 대우미싱은 이 지역 가방 봉제업체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면목동 지역은 과거부터 가방봉제가 상당히 발전한 지역이다. 이 지역 가방 봉제업계에서 동사의 기술력은 명성이 자자하다. 그만큼 거래처도 많다. 지금은 가방뿐만 아니라 의류 등 다양한 업체와 거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일대 인근 중화중교 삼거리에는 스카이특수미싱(대표: 이찬혁)이 자리잡고 있다. 스카이특수미싱은 지난 2012년 중국 청도에서 한국으로 다시 복귀했다. 원래 신정동에서 재봉기 판매업을 하던 이찬혁 사장은 중국 청도에서 10여 년간 생활을 한 뒤 다시 한국으로 복귀해서는 중랑구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최저임금 영향도 상당한 편, 공장들 소규모화, 가족화

스카이특수미싱 전경

스카이특수미싱으로 상호를 정하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영업을 시작했다. 스카이미싱은 특수 봉제 기기를 전문 취급하는 업체를 표방하며 이 지역에서 활발히 영업 중이다. 자체적으로 스카이 브랜드의 재봉기를 중국 OEM 생산하고 있다. 스카이재봉기는 주로 패턴재봉기를 취급한다. 이사장 역시 최근 봉제공장들의 가동실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며 걱정이 많다고 했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결과가 봉제업과 같은 영세업종에는 직격탄을 가했다고 봅니다. 최저임금 영향으로 소규모 봉제공장들은 직원 고용하기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아예 사람 쓰는 일은 안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동률도 점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봉제 공장 운영하는 것이 그 전에도 힘들었는데 최저임금까지 높여놓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것입니다.

스카이특수미싱 이찬혁 대표

그 결과 공장들이 점점 소규모화, 가족 위주의 형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은 힘들어지는데 공무원만 늘리는 정책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이야기한다. 한 달에 불법주차로 내는 벌금만 기백 만원대에 이른다며 이런 것 단속해 벌금 늘리고 세금 더 징수하려고 공무원 늘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특히 미싱판매업체들은 영업하다보면 부득이 불법주차를 할 때가 많은데 그 벌금이 한 달이면 엄청나다고 한다. 정말 귀신같이 나타나 불법 주차 딱지 떼고 간다며 소위 놀음판에 ‘타짜’가 있다면 주차 단속원들이야말로 타짜도 그런 타짜가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불법 주차 벌금 때문만은 아니지만 점점 영업하기 힘들어진다고 쓴웃음 짓는다. 국내 경기가 엉망인데 해외로 다시 나갈 생각은 없냐고 질문하자 요즘 베트남이 박항서 감독 인기 덕에 한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다는데 그곳으로 한번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했다. 중랑구에 소재한 미싱상들의 숫자가 많아 이 지역 동종업계 사람들의 모임도 많다. 미싱상들의 친목모임으로는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중미회’와 ‘동호회’가 있다. 동호회의 명칭은 ‘동쪽의 호랑이’라는 의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들 친목회는 거의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모임이다. 서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지만 모임을 통해 경조사도 챙기면서 상호 발전도 모색한다.

가방업체도 많았던 면목동 일대 해외로 빠지고 일부 아직 남아

대성랍빠미싱 외부전경

용마산로 인근에는 약 1년 전 면목로에서 이전해온 대성랍빠미싱(대표: 김치용)이 자리잡고 있다. 랍빠 전문업체로서 동사는 중랑구에서는 오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면목로 사가정역 인근에 있을 때는 랍빠 제작과 부품판매, 그리고 재봉기 판매까지 했지만 이전하면서부터 재봉기 등 기기 판매 사업은 축소했다. 원래 본업인 랍빠 제작에 주력하면서 각종 부품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대성랍빠는 중랑구의 가방 산업이 발달했을 무렵부터 여기에 필요한 랍빠 제작에 명성이 자자했다. 이제는 가방업체가 많이 줄어들었고 의류업체가 주를 이루면서 랍빠 제작도 의류 업종에서 주문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이전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매장 내부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랍빠 주문하는 손님과 문의하는 사람들로 쉴틈이 없는 김치용 대표와 잠시 차 한 잔을 나누고 다시 용마산로 남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성랍빠미싱 김치용 대표

동지를 얼마 남기지 않은 겨울날은 해가 짧다. 오후 5시를 넘기자 서녘의 노을도 잠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추운 날 저녁,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매장의 형광 불빛들이 무척 싸늘해 보이는 날이다. 경기 탓일까? 봉제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은 재봉사 판매업체를 빼놓을 수 없다. 중랑구 동일로에 위치한 세라통상(대표: 손창식) 천칼라실백화점은 이 지역 재봉사 대표업체로서 25년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 의류 관련 무역업체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재봉사 판매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본, 미주 등지로 수출하는 무역업체에서 다양한 업무 경력을 쌓았던 손대표는 이후 직접 무역업체를 설립하고 의류수출도 했다. 그러다가 대형 클레임으로 무역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지인의 배려로 재봉사 판매업체로 전환한 것. 초창기에는 주로 무역업체를 상대하는 영업을 했다. 무역업계에 오래 종사하다보니 아는 업체도 많았고 인맥도 뒷받침이 되었다.

세라통상 천칼라실백화점 전경

무역업체를 상대로 한 재봉사 판매 사업은 비교적 순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무역업체들이 하나 둘 해외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무역업체들이 해외로 나가고 현지에서 재봉사 구매가 이뤄지면서 거래업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때부터 무역업체 영업보다는 인근 지역에 소재한 봉제업체 상대의 영업으로 전환했다. 무역업체와 비교해 지역 봉제업체 상대 영업은 매출액부터 차이가 많았다. 무역업체가 보통 한달에 몇 백 단위의 수금액이라면 봉제업체는 몇 십만 단위의 액수가 대부분이다. 업체당 거래 금액이 약 10배 정도 차이가 났다. 그 차이는 거래업체 수로 메워야 했다. 재봉사 종류와 가짓수는 많아지고 사람 일손은 더 많이 갔다.

일거리 없어 폐업 업체들 속출, 공장해도 오너 인건비 안나와

손대표는 무역회사 상대할 때보다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역 봉제업체들이 잘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올해처럼 이렇게 공장들이 많이 노는 것은 처음입니다. 요즘 어딜 가나 한산합니다. 공장을 가봐도 그렇고 식당, 호프집에도 사람이 없어요.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던 동대문도 요즘에는 파리 날리고 있어요. 제 지인이 동대문에 매장을 가지고 있는데 한 때 권리금이 2억 5천만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서로 들어오겠다고 난리였던 상권인데 이제는 보증금 8천 만원 받고 정리해서 나온다고 최근에 연락이 왔습니다. 이 동네에서 거래한 지 오래되어 잘 아는 한 공장 사장도 10여 명이나 되는 직원들 다 내보내고 폐업해서 자기는 어디 봉제공장에 취직할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현패션 작업현장

공장 운영해봐야 두 내외 인건비도 못 건질 때가 부지기수라며 이제는 지쳤다는 거예요.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요즘 너무 많아져 걱정입니다.” 손대표는 올해가 더 걱정이라며 자신도 해외 쪽으로 다시 판매망을 열어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특히 필리핀이 원부자재 생산이 미비해 현지에 재봉사 수출도 가능할 것이라며 현재 다방면으로 조사 중이라고 한다. 자체 건물인 세라통상의 2층에는 토탈봉제업체인 현패션(대표: 조수현)이 위치해 있다. 봉제업체들의 사정도 들어볼 겸 손대표의 안내로 잠시 올라가 조대표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패션 역시 여느 봉제업체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무 많은 물량이 해외로 빠져나가 전반적으로 물량이 없다는 것, 그리고 메인 거래업체가 거의 없어져 전천후로 이것저것 하는 공장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메인 거래업체라는 개념이 있었고 공장별로 전문 아이템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거래업체가 싼 곳만을 찾아 가는데 메인 업체가 어디 있을 것이며 그나마 웬만한 물량은 대부분 해외로 빠져나가 국내에서 도는 오더는 별 볼일 없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자신도 공장 운영하면서 이윤 내기는 정말 힘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종합소득세는 내야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공장 직원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들로 4대 보험 가입 없이 일당제 식으로 일하고 있는데 임금 지급할 때 세금으로 소득의 3.3%를 세무서에 신고하는데 이것마저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희가 연간 매출이 3억 대가 되기 때문에 소득 신고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몇 명 있으면 지출이 줄어들어 종합소득세가 부과됩니다. 실제로는 적자 나는 공장인데도 말이지요. 3.3%도 공장에서 대신 내주는 이들도 많은데 신고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소득이 노출될 경우에 각종 의료보험료 인상이나 연금 혜택의 축소 등을 우려해 신고하면 일 못하겠다고 나오는 겁니다. 결국 업주가 고스란히 세금으로 내게 되는 겁니다.” 조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요즘 대한민국 봉제공장 사장님들은 이래저래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게 된다.

지자체 봉제 지원 센터 건립, 장비 및 설비 공급 업무 많아

동서울종합기계 전경

그런데 사실 이런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대사의 격전지였던 아차산이 뒤로 넓게 뻗어있는 중랑구의 사가정길을 걷다가 다시 봉우재로로 향했다. 거기에는 25년 이 지역에서 활동 중인 동서울종합기계의 정귀필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서울종합기계는 과거 폐열을 활용한 모터펌프 없는 스팀보일러를 개발해 출시했던 이력이 있다. ‘퓨전보일러’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는데 시대를 앞서갔던 방식이어서 대중적으로 보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정대표는 보일러뿐만 아니라 수동식 오리털 주입기 등 다양한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다.

동서울종합기계 정귀필 대표(右)와 임복상 사장(左)

봉제 주변기기 개발을 많이 했지만 번번이 자금 사정으로 빛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동서울종합기계는 각종 관급 공사로 바쁘다. 지자체별로 봉제관련 지원센터가 세워지고 교육장 및 공용 샘플제작 지원시설에 다양한 설비 기기 설치 공사를 진행 중이다. 정대표는 봉제기기 뿐만 아니라 건축, 전기 설비 등에도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봉제 플랜트 공사에는 막힘이 없다. 최근에는 정부의 각종 봉제기기 지원사업, 환경 개선 사업 등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실적을 쌓았다.

최근 영세 봉제업을 감싸안기 위해 정부의 각종 지원 사업이 많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공장도 많다며 본지에서 관련 정보를 더 상세하고 폭넓게 제공할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다시 겨울 저녁이 찾아왔다. 날은 풀려 저녁 기온도 많이 올라갔지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않다. 짧은 시간, 지역의 몇몇 업체들을 만났지만 중랑구의 봉제업체, 그리고 미싱상가 종사자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이 노력하는 이들이 믿음직해 보인다.

[취재: 이상철 기자]